QT 나눔
제 목 [] 성전의 법
본문
에스겔 43:1-12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천사가 에스겔을 이끌어 동쪽 문으로 데려옵니다. 그때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다가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온 땅이 빛납니다. 전에도 같은 환상을 본 적이 있었던 에스겔은 곧바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동쪽 문을 통해 들어온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 성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서 자신의 죄악들을 부끄러워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부끄러워하면 그들에게 성전의 법을 알게 하고 지켜 행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말씀은 3절 말씀,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에스겔 1장을 펴고 그가 그발강가에서 보았던 환상에 대해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네 개의 얼굴과 네 개의 날개를 갖고 있었던 그룹들이 나오는 환상에 이어 28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그 주위에는 비 오는 날 구름 속의 무지개처럼 빛나는 광채가 있었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나타나신 것을 보여 주는 영광의 광채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엎드려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라고 에스겔은 처음 마주한 하나님의 영광을 묘사합니다. 두 번째로는,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았던 환상인데요, 에스겔 10장과 11장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우상숭배에 대해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후,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시는 장면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 네 생물의 날개 위에 머물고, 성전 동문으로 이동해서, 성읍 동쪽에 있는 감람산에 잠시 머물다가 떠납니다. 오늘 본문은 세 번째 환상으로 에스겔이 동쪽에서부터 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에스겔은 지난 두 번의 기억들이 떠올랐을 것 같습니다. 그는 곧바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그렇게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성전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 부르십니다. 나도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나를 떠나실 수도 있고, 나에게 돌아오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계신지 나를 떠나셨는지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인자야 너는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는 10절 말씀을 읽으며,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신 증거는 ‘나의 죄악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라는 답을 주십니다. 나에게 회개하는 심령이 있는지 없는지가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계신지 안 계신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죄가 죄인 줄도 몰랐습니다. 온갖 합리화로 죄를 포장하며, 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애매함 뒤에 숨었던 것 같습니다. 은밀하게 행해졌던 죄는 드러나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게 없어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야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내가 짓는 죄가 하나님과 바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웃집에 방문했을 때 자녀가 그릇을 깨면 부모가 변상해야 하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부모는 부모라는 이름의 능력으로 자녀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도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죄를 죄로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해 주시니까요. 죄가 죄로 인식이 되니 합리화를 할 수도, 숨을 수도,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죄는 죄니까요. 죄를 감추면 죄책감에 묶이게 되고, 죄를 드러내면 자유하게 된다는 놀라운 비밀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디폴트 설정이 죄인인데,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달라진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제 저의 디폴트 설정이 죄인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뀐 것입니다. 마치 비번을 바꾼 것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비번이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니 죄가 열립니다. 나의 죄악이 보여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20대 때에 고속버스를 타면 안전벨트를 일부러 매지 않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고가 나서 죽기를 바라던 마음이었습니다. 야곱에게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은 에서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생명을 파리목숨보다도 하찮게 여겼던 것이 죄악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으며 삽니다. 20대에는 몸을 함부로 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무시하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았더니 병에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육신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며 소중히 여기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니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인생이 무의미하고 허무하기만 했습니다. 40대에는 하룻밤에 남편을 잃고 따라 죽어야겠다고 쉽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남편을 의지했던 결과는 사망의 길이었습니다. 사람을 의지했더니 사람에 따라 죽고 살고, 사람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디폴트 설정이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니 삶에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안전벨트도 성의를 다해 메고, 식사를 꼬박꼬박 건강하게 챙겨 먹고, 나의 몸은 소중하다며 잠도 충분히 자려고 애씁니다. 여전히 사람에 따라 약간은 출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찾는 법도 배워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사는 삶은 사람에 따라 죽고 사는 게 결정되지 않고, 나의 죄 때문에 죽고 사는 게 결정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처럼 나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적용합니다. 1절에서 “그가 나를 데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이끄는 대로 이끌려 살아가는 삶입니다. 6절에서, “성전에서 내게 하는 말을 내가 듣고 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듣는 삶입니다. 10절에서, “인자야 너는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것은 보이라 말씀하시면 보이고, 측량하게 하라 말씀하시면 측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는 삶은 수동적인 삶입니다.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고, 멈추라 하시면 멈추고, 돌아가라 하시면 돌이키는 삶입니다. 세상에서의 주도적인 삶과는 다른,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두번째로 저에게 다가온 말씀은 10절, 인자야 너는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돌아온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새 성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 주라고 명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들의 모든 죄들을 낱낱이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드러난 자신들의 죄를 부끄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성전의 형상을 측량하라는 의미는 성전의 제도, 구조, 출입구, 규례, 법도, 율례를 알게 하여 그 모든 법도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해 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만 행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깨달아집니다. 또한 성전의 형상을 측량하라는 말씀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게 되면,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자발적으로 지켜 행하게 될 것 같습니다.
교회 사역과 큐티 모임 모두 여름방학을 하고, 한가로운 여름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나의 건강, 나의 휴식, 나의 시간, 나의 평안.. 에 집중하다 보니, 금세 내가 중요해지고,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들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큰 어려움을 당한 분이 생각나며, 그분을 초대해 식사를 차려 드리고 기도해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러면 오늘 운동을 못 가는데.. 주저하는 마음이 들고 순간 마음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집에 돌아와, 참 어이가 없다며, 남편에게 부끄러운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분의 고통에 비교하면 운동 하루 못 가는게 가는 게 도대체 비교나 할 수 있는 일이냐고, 어이가 없는 마음의 갈등을 남편에게 고백하고, 하나님앞에 부끄러운 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대로 행하기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말씀에 비추어 드러나는 나의 죄를 부끄러워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회개하라는,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습니다. 10절의 하나님의 말씀이 12절의 말씀으로 연결됩니다.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라는 말씀인데요, 성전이 산 정상에서 빛을 발하면 그 주변 전체가 거룩한 땅이 됩니다.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이 났다고 했던, 오늘 본문 2절 말씀 처럼요. 성전의 법으로 인해 그 주위에 있는 나도 빛이 납니다. 나는 당연히 빛이 되어 내 주변의 어두움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소명의 의미는 부를 소, 목숨 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위해 사람을 부르셨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소명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성전에만 임재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모든 곳에 계시고, 하나님이 계신 곳이 어디나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제 안에 계시니 저도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나 제 안이 깨끗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떠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여, 저의 좌악이 낱낱이 드러나고,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거룩함을 유지할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제 안에 영원히 계실수 있도록, 날마다의 삶을 정갈하게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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