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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그는 너의 형제니라

등록일 2026-05-20
작성자 꿈꾸는자

본문

고린도전서 6:1-11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성도 간의 다툼은 교회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성도들 간의 분쟁을 형제 간의 지극히 작은 일로 여겨야 하며, 피차 고발하는 것 자체가 이미 ‘뚜렷한 허물’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이러한 다툼이 발생한다면, 성도 앞에서 고발하고, 교회 안의 지혜 있는 자들이 판단해야 합니다. 죄악된 세상을 심판 하여야할 성도가, 타악한 천사를 판단해야 하는 성도가, 교회안의 분쟁을 세상 법정의 재판관들에게, 세상의 믿지 않는 자들에게, 가져가는 것은 불의를 행하는 것과 같다고 바울은 경고 합니다. 이러한 불의한 자들은 성적으로 타락한 자들의 죄와 같으며,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같이 불의한 자였다가 주 안에서 변화를 받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은 합당한 자로 살도록 호소합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말씀은,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형제 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라는 5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다가 앞의 4장 14절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라는 말씀과 비교가 됩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교회의 분열과 교만에 대해 책망하는 편지를 쓰며, 성도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부연 설명했던 본문이었는데, 그러나 그는 오늘 본문에서는 반대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의 다툼을 교회 안에서 판단하지 못하고 세상으로 가져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바울은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한다”고 고백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부끄럽게 해서라도 이 일만은 막고 싶은 바울의 간절한 심정이 느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성도가 교회 안에서 판단할 일과 교회 밖에서 판단할 일을 분명하게 나누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교회안에서 판단할 일은 성도간의 다툼인데, 바울은 이것을 ‘형제간의 일’로, ‘지극히 작은일’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판단할 만한 지혜를 이미 주셨으니, 성도들은 형제 간의 일들에 대한 판단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밖의 세상을 판단하고, 타락한 천사들을 판단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주어진 직분이기 때문에, 교회안에서의 판단은 당연히 감당해야 한다고,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형제가 형제를 서로 고발하는 것은 분명한 직무유기라고 강조합니다. 피차 고발한다는것은 스스로 주님의 지체임을 포기하는 것이고, 교회가 세상의 패배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이 패배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고, 속는 것이 낫다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나에게도 교회 안의 다툼과 분쟁을 세상으로 가져가는 행동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어떤 사람과 분쟁이 생겼을 때, 내 마음을 알아줄 것 같은 다른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하곤 하는 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툼을 세상으로 가져가는 행동이 되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봅니다. 상대방에 대한 뒷담화를 하며, 내가 옳고 그가 잘못했음을 강조하며, 하소연을 듣는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고 싶은 은근한 음모, 악한 의도가 내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쟁을 교회 안에서 판단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판단하도록 그 분쟁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과의 분쟁이 생긴다면, 상대방을 고발하려는 나의 입을 닫고, 말씀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지혜로 그 분쟁을 해결해 주시기를 기도해야겠다고 적용합니다. 


저에게 두 번째로 다가온 말씀은 8절,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8)라는 말씀입니다. 형제를 고발하는 것은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는 너희 형제로다” 라는 말씀이 확대되어 보이며 가슴을 콕콕 찌릅니다. 주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주안에서 한 몸을 이룬 형제라는 의미를 되새기며 그러한 형제를 고발하는 것이 불의한 자의 행동이라는 바울의 경고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너무나 쉽게 형제를 비판하는 나의 습성들에 대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부지중에 형제를 비판하는 죄를 지으면, 그 죄에서 형제 간의 분쟁을 일으키는 악순환이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제 형제를 고발한다는 것이 왜 불의를 행하는 것이며 속이는 행동인지 이해가 갑니다. 형제는 고발할 대상이 아니고 용납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형제 간의 고발이 왜 죄이며 불순종인지 깊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9절과 10절에서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 두 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봅니다. 불의한 자는 불의를 행하는 자이고, 불의를 행하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바울은 다툼이 문제가 아니라 다툼을 세상 법정에 고발하는 것, 문제를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않고 세상으로 가져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 권세에 굴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패배자가 되지 않도록 바울은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상대가 나의 형제이기 때문이고, 나는 주 안에서 변화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11절 말씀처럼,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죄사함을 받은 거듭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하는 죄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바울이 말한 ‘뚜렷한 허물’인 서로 고발하는 죄는 나와 상관없는 죄가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나의 삶에 셀 수도 없는 분쟁들이 있었지만 그중 한 자매와의 분쟁이 생각납니다. 서로 잘했다고 상대가 잘못했다고 판단했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린아이 같은 부끄러운 소란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어린아이와 다른 한 가지는 ‘은근히 포장해서’ 나의 의를 드러내고, 상대방의 악을 폭로하는, 더 악한 분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날것으로 악했는데, 하나님을 믿고 나서는 교묘히 포장된 악을 행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 주시니 부끄러워 시선을 둘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하는 죄는 ‘은근’ 과 ‘교묘’의 죄 입니다. 이제는 그 더러운 포장을 열고 차라리 날것으로, 나의 죄성의 민낮 그대로, 하나님께 가져가야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은 합당한 자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요, 하나님께 질문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기고 거룩해진 존재,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은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을 아는 것, 나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 시작이라는 생각을 주십니다. 불의한 자들이었던 고린도 사람들이 의로운 자들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불의한 자였던 나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의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사람은 다툼이 있어도 성도들 앞에서 고발해야 하고, 세상에 고발하느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거나 속임을 당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배웁니다. 교회 안에서 다툴 수 있지만, 타툼을 세상에 가져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로 가져오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타툼을 세상으로 가져간다는 것은, 내 맘대로 해석하고 내 맘대로 해결하려는 죄성이고, 하나님께로 가져간다는 것은 다툼을 ‘형제간의 일’로 여기며 부모님께 심판을 맞긴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안의 분쟁을 세상의 법정으로 가는 것은 부모 없는 자식의 행동이며, 하나님이 심판자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행동이므로,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뚜렷한 허물’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성도간의 다툼을 ‘지극히 작은 일’로 여길수 있을까요, 또다시 하나님께 질문 드립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기억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도의 사명이 교회 밖의 세상을 판단하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교회 안의 성도 간의 판단쯤은 소소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비결은 성도간의 다툼을 진심으로 ‘형제간의 다툼’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형제 간의 다툼이라면 심판해 주실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이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형제간의 다툼’이라면 가정안에서 해결할수 있는 문제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형제간의 다툼’이라고 여긴다면 약간의 손해도 감수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간의 다툼’으로 생각한다면, 내가 감수한 약간의 손해에 대해 부모님께서 보상해 주실것이라는 소망마저 생기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고발당해도 고발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을 판단할 때에도 그것을 지극히 작은 일로 여기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기억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은 나의 정체성을 기억하여, 교회안에, 공동체안에, 가정안에, 어떤 분쟁과 고발이 있어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것들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은 합당한 자로 살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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