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Love never fails
본문
고린도전서 13:8-13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사라지지만, 사랑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행하고 있지만,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온전하게 알고 온전하게 행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어린아이같이 말하고 생각하고 깨닫지만,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말씀은 8장,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 번역본으로 같은 본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Love never fails,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영원하다는 말씀이 사랑 외에 다른 것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다른 것의 예는 예언, 방언, 지식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도 사람이 사모하는 지식도 모두 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이 끝이 있듯이, 이 세상에서 구하고 누리는 모든 것들은 끝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으로 나의 삶을 비추어 돌아봅니다. 내가 열심히 추구하고 있는 것은 사랑인가,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일들인가 생각해 봅니다.
작년에 일대일 제자양육을 한 번에 네 분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봄에는 한 분과 일대일을 하면서 크게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각각의 네 분의 상황이 급했기도 했지만, 내 안에 ‘내가 해야 한다는 마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열심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나의 한계를 아는 절제와 한꺼번에 여러 명에게 나를 줄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지식을 쌓는 공부는 여러 명과 할 수 있지만, 일대일의 사랑은 단 한 명에게만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의 지식을 쌓는 공부는 사랑이 없어도 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의 말씀 나눔은 사랑이 필수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경 공부가 사랑보다 앞서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앞으로는 일대일 제자 양육도, 큐티 모임도, 목장 성경 공부도, 공부 이전에 사랑이 먼저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겠습니다. 나의 열심이 하나님의 열심을 앞서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교회에 처음 출석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던 어느 날 밤에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어린 아들과 단둘이 남았을 때, 저에게 일대일 성경 공부를 해 주셨던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엔 아들이 어려서 교회에 갈 수 없는 저를 위해, 집사님은 수요일 저녁마다 저희 집으로 먼 길을 와 주셨습니다. 그때 했던 성경 공부 내용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지만, 저를 향한 그분의 애통함과 불쌍히 여김과 사랑만은 제 마음에 지금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사님이 오시던 수요일 저녁을 일주일 내내 기다렸던 기억, 그분의 방문을 생명줄처럼 붙잡았던 기억, 그분이 나에게 베풀어 주셨던 예수님의 사랑이 제 마음에 인쳐졌고, 지금까지도 오늘을 사는 힘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은사와 지식은 사라지지만, 사랑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씀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그 집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다른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나도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달되기를 소망하지만, 그러나, 그 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때론 마음에 낙담이 됩니다. 상대방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상처를 받고, 마치 내가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읽으며 새롭게 깨닫게 된 게 있습니다. 상대방이 내가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복음은 절대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처럼, 나는 복음의 전달자입니다. 나는 구원의 통로일 뿐인데, 마치 구원자인 냥 착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사랑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결과에 실망하지 않아야겠다고 적용합니다.
해마다 한국에 계신 친정부모님 댁으로 친정살이를 갑니다. 아직도 복음을 거부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올가을의 친정살이가 기다림보다 부담으로 다가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바울의 심정으로 친정살이를 간다고 생각했는데, ‘친정살이’라는, 제목만 그럴싸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니, 고린도전서 9장 26절 말씀이 떠오릅니다.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며, 라는 바울의 고백과는 반대로, 나는 향방 없는 것같이 달렸고, 허공을 치는 것같이 싸웠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시작의 심정은 바울과 내가 같았는데, 왜 과정이 이토록 달랐을까 생각해 보니, 이어지는 27절에서 답을 주십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켰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내 몸을 치셔 복종시키기는 커녕, 내가 부모님보다 중요했고, 복음을 전하려는 나의 마음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앞섰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복음을 거부하시는 부모님이 문제인 것이 아니고, 복음보다 앞선 내가 문제였다는 것을 회개하게 하십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며, 올가을의 친정살이를 새롭게 꿈꾸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두번째로 다가온 말씀은, 9절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절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12절 부분적으로 아나, 세 구절에서 반복되는 ‘부분적으로 아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인 방언과 예언조차도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은사가 유한한 육체에 담겼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인간이 쌓는 지식조차도, 평생을 올인한다 하더라도 일정 부분밖에 알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어린아이가 장성한 사람이 되면, 버려야 하는 어린아이의 일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이 전부이고,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인 냥 말하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어린아이의 일이라면, 나는 아직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지 못한 사람인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바울은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만 진정으로 장성한 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성한 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부분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는 것을 자랑하지 않고, 입을 닫고 듣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주십니다.
또한, 바울은 온전히 알 때가 온다고 합니다. 10절에서 온전한 것이 올 때, 부분적으로 하던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때가 오면, 12절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된다고 한다. 영이신 하나님을 육으로 볼 때는 부분적으로 알게 되지만, 영이신 하나님을 영으로 보게 되면 온전히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으면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사랑이 없으면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내 안에 사랑이 있으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나는 왜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까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하나님께 질문드립니다.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온전하게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3).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다는 믿음,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재림에 대한 소망, 믿음과 소망은 신앙생활에 꼭 필요한 두 가지 요소일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의 근거가 사랑이 아니라면 헛된 달음질, 헛된 싸움일 수 있다는 바울의 경고를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랑,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는 것이 나에게 주신 사명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 하루를 사는 동안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사랑으로 모든 것이 시작하여 사랑으로 모든 것이 마치기를 소망하지만, 그 소망을 이루시는 분은 내안의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내가 온전히 누군가를 사랑할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나를 내어드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올 가을 친정살이에는 바울처럼 스스로 몸을 쳐서 복종하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사랑을 우선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언제나 처참한 심정이 됩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사랑보다 일을, 사랑보다 사역을 먼저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될 텐데, 습관적으로 일을 하곤 합니다. 일은 눈에 보이고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요? 어떻게 하면 일보다 사랑을 우선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모든 일을, 모든 생각을, 모든 말을 사랑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요? 간절히 알고 싶고, 간절히 행하기를 원하는 심령이 되곤 하지만 현실은 좌절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오늘 말씀대로,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사랑의 안경을 끼고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겠습니다. 사랑의 필터를 끼고 바라보면, 원망도 비판도 정죄도 섭섭함도 분노도 스멀스멀 그 모습을 감출 것 같은 상상을 해봅니다. 내가 아는 것이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내가 모르는 상황이 있을 것을 인정하는 것이, 사랑을 우선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상상으로 꿈꾸는 하나님 나라가 내 삶 속에 현실이 되도록, 말씀 묵상의 훈련을 계속하기로 적용합니다.
출근을 앞두고 있는 남편이 늦잠을 잤습니다. 나는 어젯밤 늦게 잤나 보다고 슬쩍 한마디를 하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점잖게 표현한 나의 말의 숨은 의미는 드라마 보다가 늦게 잔 거 아니냐는 질책을 담고 있었습니다. 눈치를 챘을 법한데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출근했고, 돌아와 같이 저녁을 먹는데, 풀리지 않는 회사일이 있어서 어제 늦게까지 일했는데 잘 해결되었다고 설영해 주는 남편 말을 들으며 나는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고, 내 멋대로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남편은 나의 질책에도 장성한 자의 면모를 보여 주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한다는 바울의 말씀 앞에서 나의 유치함을 회개합니다.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온전히 알게 되는 날까지, 나의 온전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부분적으로 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믿음과 소망보다 먼저 사랑을 구합니다. 사랑이 없는 열심과 사역은 세상 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열심히 일하기 전에 먼저 사랑하도록, 우선순위를 잊지 않도록 깨우쳐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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