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옳다, 아니라
본문
마태복음 5:27-37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이 이어진다. 간음하지 말라-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다.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주라-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간음한 자이며,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간음한 자가 된다. 주께 맹세한 것을 지키라-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고, 단순히 ‘예’와 ‘아니요’로 대답하라.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33),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땅으로도 하지 말라(34). 맹세를 하라는 말씀일까 하지 말라는 말씀일까. 세상에서도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는 말은 한다. 말로만 맹세한다고 하지 말고, 맹세를 했다면 지키라는 말씀일것 같다. 맹세를 하지 말라는 뜻은 사람은 맹세를 할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아닐까. 사람은 맹세를 지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며, 맹세를 하지 않는 겸손을 요구하시는 것 같다.
마음에 없는 말은 아예 하지 마라. “기도해 주겠다”고 말하고 기도하지 않거나, 마음에도 없으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빈다”고 하며 경건한 말로 연막을 치면, 상황이 더 악화될 뿐이다. 종교적 장식을 멋지게 단다고 해서 너희 말이 진실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그렇다’, 아니면 ‘아니다’라고만 하여라. 자기 뜻을 관철하려고 말을 조작하다가는 잘못된 길로 빠진다.(메세지 성경 5:33-37)
결국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삶은 정결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정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언어도 정직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언어가 정직해 지는것은, 할수 있으면 할수 있다고 말하고, 할수 없으면 할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척하지 않는 것이며, 더하지 않는 것이다. 언어에 불필요한 장식을 달지 않는 것이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부터 나느니라. Anything beyond this comes from the evil one. ‘예’ 와 ‘아니요’, 대답 외에 말을 더한다면, 그 말은 악으로부터 나온 말이라는 말씀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들과 말의 패턴에 대하여 관찰하고 주의 하여야 겠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어색함을 피하기 위하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나를 드러내기 위하여, 잘 보이기 위하여.. 언어에 장식을 더하는 나의 모습이 말씀 앞에 그대로 드러난다. 언어를 치장하는 것의 의도는 ‘나’의 유익을 위해서 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부끄럽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을 더하는 것’을 악이라 말씀 하셨구나..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하나님 앞에 정결한 삶을 살기 위해여, 나의 언어부터 정결해 져야 겠다. 언어에 불필요한 장식을 빼고, 정직한 표현을 할수 있도록 훈련하기로 적용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 합니다. 구약의 율법의 말씀에 의도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동도 중요하지만, 그 행동을 하는 마음의 중심이 더 중요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저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내가 한 말에 내가 책임을 질수 없는, 저는 죄인 입니다. 말을 하기전에 하려던 말을 먼저 점검하는 하루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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