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누가 맹인인가
본문
마태복음 9:27-38
예수님이 두 맹인과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두 맹인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지만,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든 사람들과 상한 심령들을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고 방황하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주인에게 청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27). 두 맹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른다. 예수님을 다윗의 혈통을 이어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로 본 것이다. 육적 시력은 잃었지만, 영적 시력이 살아있는 두 맹인을 관찰한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불쌍히 여김을 청할 대상을 분명히 알고 있다. 두 맹인은 치유의 대상, 구원의 대상이 누구인지 분별하고 청하는 영적 시력과 믿음을 가졌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귀신의 왕’이라고 깍아 내린다. 그들은 육신의 눈을 뜨고 있지만 영적인 맹인과 다를바가 없다. 성경과 율법에 능통한 그들은, 하나님이 예언하신 메시아가 아닌, 자신들이 만든 메시아를 기대했다. 정치적, 군사적 해방자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했던 그들은,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쫒아내시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연약해 보이는 메시아를 거부한다.
나는 두 맹인일까 바리새인일까. 나는 어떤 관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나도 바리새인처럼 영적인 장님이었다. 마흔이 되도록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많은 신들 중에 한분 이신줄 알았다. 나는 나의 삶의 주인은 나 인줄 알았다. 어떻게든 더 계속 성실하게 노력하여 내가 흡족해 하는 삶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러나 결과는 좌절과 허무와 우울 이었다. 이제는 두 맹인처럼,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예수님을 따라 다닌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추수할 일꾼의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 삶을 살게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추수할 일꾼의 삶을 살겠다고 기도 하면서도, 기도와 걸맞지 않게 부족하고 실수 투성이인 저의 모습이 부끄러워, 그럴수 있을까 좌절의 마음도 올라 옵니다. 그러나,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죄의 죄악을 씻으며 회개하는 심령으로 돌이켜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붙잡고 다시 용기를 내어 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인 그리스도의 증인, 추수할 일꾼의 삶을 살아내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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