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재촉하사
본문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빈들에서 장정만 오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신 후에, 제자들을 배에 태워 먼저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혼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으로 고난을 당하자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자 바다에 빠져들어갑니다. 예수님이 즉시 베드로를 붙잡아 주시며, 그의 작은 믿음을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칩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예수께 절하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건너간 게네사렛에서 예수님은 병든 모든 사람들을 고치셨고, 그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모든 사람들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말씀은 24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가게 하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토도 달지 않고 순종했는데, 그들이 탄 배가 어려움을 당하게 된 상황이 마음에 걸립니다. 제자들만 배에 태워서 보내고 혼자 산으로 기도하러 가신 예수님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가는 길에도 고난이 있다는 것은 성경의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수 있지만, 아브라함의 시험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도,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왜 고난도 함께 주시나요 하나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제자들에게, 바로 이어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고린도전서 말씀이 떠오릅니다. 제자들이 자만하여 넘어질까 봐 시험하신 것인가요 하고 예수님께 질문하다가, 지난 여름의 캄보디아 선교 여행이 생각납니다. 목사님 포함 일곱명이 열흘동안의 일정으로 선교현장에 갔었는데, 하루종일 이어지는 바쁜 일정에도 새벽의 큐티모임과 늦은 저녁 기도모임을 놓지 않고 일곱명이 하나가 되어, 그날 그날의 사역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은혜를 날마다 누렸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하루가 휴식으로 주어져 여유롭게 시내 관광을 하고 저녁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두 팀으로 나뉘어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 중, 다른 한 팀에서 작은 말타툼이 큰 싸움으로 번져 다시 안 보겠다고 공항 안에서 서로 헤어진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은혜롭게 사역을 마치고 단 하루 만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곧, 어려운 일들이 많았을 때는 말씀과 기도로 팀이 하나가 되었었는데, 모든 사역을 마치고 마지막 날이 통으로 휴식이란 이름으로 주어졌을때, 말씀과 기도까지 같이 놓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정만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신 후에 예수님은 기도하러 가셨는데, 이유를 모른 채 예수님의 지시에 순종했던 제자들은 배에 올라 무엇을 했을까 상상해 봅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대단하신 분이시라고, 그가 베푸신 기적에 감탄하며,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어깨가 으쓱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간의 피곤이 밀려와 그냥 누워 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처럼 그들도 배 위에서 함께 기도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시험이었습니다. 바람이 물결을 거슬러 파도가 심하게 이는 시험이 그들에게 다가왔고,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산 위에서 기도하셨던 예수님은 이 상황을 아시고,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은 조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예수님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유령이라 부르며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기도는 영과 육의 눈물 뜨게 하고, 두려움은 영의 눈은 물론이고 육의 눈조차도 멀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고난이 오면 본능적으로 두려운 마음이 따라옵니다. 경제적인 고난이 오면 당장 밥은 먹을 수 있을까 두려워지고, 건강의 고난이 오면 나을 수는 있을지 질병이 완치가 안 될까 봐 두려워집니다. 관계의 고난이 오면 평판이 나빠질까 봐, 혼자 고립될 것 같은 두려움이 옵니다. 그러나, 고난이 오더라도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 하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무서워하면 예수님도 알아볼 수 없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고난이 오더라도 무서워하지 않으면,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시는 예수님이 보일 것이니 안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또 한가지는 기억하고 싶은 것은,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처럼 내가 물위를 걷다가 예수님만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곳에 시선을 빼앗겨 물에 빠지게 되더라도, 나를 즉시 붙잡아 주시는 예수님의 손이 있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삶은, 고난을 면제 받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 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두 번째로 저에게 다가온 말씀은 32절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가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습니다. 베드로의 작음 믿음을 안타까워하셨지만,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를 붙잡으시고, 함께 배에 오르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나의 정체성이 나의 실수나 믿음의 없음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치고, 목적지인 게네사렛 땅에 이르게 되는 것을 봅니다. 내 인생의 배에도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세찬 바람도 잔잔해지고, 목적지까지 순항하게 될 것이 믿어집니다. 내 인생의 배는 어떤 배이어야 할까도 생각해 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타고 싶어하는 호화 유람선일까? 그러나, 그 배에는 예수님이 타지 않으실것 같습니다. 모든 게 완비된 곳, 부족함이 없는 곳에서는 예수를 찾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아마도 예수님이 타고 싶으실 배는 구조선일 것 같습니다. 그곳은 생명에 대한 간절함 외에는 필요한 것이 없는 곳, 구원에 대한 소망만이 있는 곳 일테니까요. 내 인생의 배는 구조선 이기를 소망합니다.
세찬 바람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생겼지만, 두려운 마음 때문에 세찬 바람이 불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마음의 눈이 멀고, 두려운 마음에 온몸이 마비가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두려움 속에 은둔자가 되어, 바람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면, 세찬 바람이 나의 삶을 끊임 없이 흔들어댈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요동 친다면, 육신의 눈을 뜨고 예수님께 달려 가기로 적용합니다. 두려움은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바람을 꾸짖어 잠잠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다.
제 작년 가을에 남편이 응급실로 들어가 입원해야 하는 사건이 생각 납니다. 치솟는 간수치의 원인을 찾느라 일주일 내내 온갖 검사를 하며 새벽마다 피를 뽑아가는 것외 아무것도 할수없는 기다림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최악의 경우 간이식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남편의 눈은 촛점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병원에서 수업을 듣고, 딸과 사위는 일을 마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오고,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는 일로 하루 하루를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의사의 한 마디에 희망을 가졌다가, 또다시 의사의 한마디에 희망을 잃는 일들이 반복 되어갔습니다. 병실에 남편과 둘이 남게 되면, 그 적막함에 남편이 불쌍해지고, 한번 남편을 잃었는데 나는 다시 또 남편을 잃으려나, 말로 표현할수 없는 연민과 슬픔이 나를 사로잡으려 하였습니다.
“우리 같이 큐티할까?” 입원 셋째날, 멍하니 벽을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이 애처로와, 남편에게 큐티 하자고 청했습니다. 작은 방, 침대옆의 사이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큐티책을 열고, 말씀을 교독하며, 바라본 남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 있었고,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나의 가슴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이 폭풍 가운데 표류하는 우리의 배에 오르신 순간이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닫게 됩니다. 그 날부터 이어진 한달간의 일상생활의 멈춤의 시간동안, 원인을 알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동안, 올라갔던 수치가 정상으로 떨어지기 까지 걸렸던 두달반의 시간동안, 두려움의 바람에 넘어지기 않고, 세찬 바람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께 의지하며 인내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하나님께서 주신 큰 선물은 저녁 먹고 설겆이 하고 남편과 같이 하는 큐티 시간 입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 기적일까. 부부가 매일 같이 큐티 하는 것. 있을수 없는 일이지.. 농담까지 할수 있는 담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믿음이 작은자여 왜 의심하느냐고 말씀 하시며,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그의 배에 오르시어 거친 풍랑을 잠잠케 해주시는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할 일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되는데, 너무 많은 다른 소란한 일들도 분주한 저의 삶을 주님 앞에서 회개 합니다. 주위에 저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저의 손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잡을수 있도록, 복의 통로의 삶을 담대하게 살아낼수 있도록 기도 드립니다. 예수님이 없는 배에서 헛된 순종을 하지 않도록, 예수님을 유령이라 부르는 영적 장님이 되지 않도록, 저의 육신의 눈과 영적인 눈의 시력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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