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여호와의 이름
본문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사람이나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뭇 나라가 벌떼처럼 나를 에워싸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물리치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능력, 나의 찬송, 나를 구원자 이십니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셨다고 고백하고,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습니다. 나를 심히 경책하셔도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나는 살아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겠습니다. 구원의 문에 들어가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건축자들이 내버린 돌을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신 이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말씀은 10절, 11절, 12절에서 반복되는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라는 말씀입니다. 뭇 나라들이 벌떼처럼, 초원의 들불처럼 달려들어 나를 에워싸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물리치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담합하여 나를 공격해 올 때, 내 힘으로는 대적할 수 없어도, 하나님 이름으로 대적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벌써 7월이 오고 이제 완연한 여름입니다. 일년의 반이 벌써 가고 세컨 하프가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봄을 돌이켜보니, 뭇 나라들이 벌떼처럼 몰려왔던 사건들이 기억납니다. 맡고 있는 사역팀의 리더십에 대한 공격을 받고 정말 사역을 계속해야 하나, 그만두어야 하나, 마음에 낙담이 커져 갔었습니다. 리더십에 대한 비난을 카톡 문자로 반복해서 받아 보니 댓글 때문에 사람이 실족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역팀 안에서 의지하며 마음을 더 주었던 자매는 바라던 직장이 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역팀을 떠났습니다. 중학교 때 짝궁으로 만나 지금까지 아픈 손가락이었던 친구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네 가지 사건이 한꺼번에 밀려왔는데, 세상이 담합하여 밀물처럼 공격해 오는 것처럼 느껴졌고, 반대로 나의 믿음은 무력하게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던 지난 봄이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벌떼처럼 달려드는 뭇 나라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끊겠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나는 하나님 품에 달려가 숨을 생각만 했지, 하나님 이름으로 끊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대적하지 못하고 피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마음의 전쟁 기간이 길어졌던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소극적으로 숨기만 했지 적극적으로 싸우지 못했으니 전쟁의 기간이 두달이 훌쩍 넘어가도록 대적들을 방치했으며, 쓸쓸한 마음으로 아픈 봄을 쓸데없이 길게 보내야 했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대적의 공격을 끊었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여호와의 이름의 의미는 무엇일지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주십니다. 나의 능력이 아닌, 나의 창조자이시며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쟁에 임하는 자세일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에 임하면 뭇 나라들이 벌떼처럼, 마른 초원의 들불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이름으로 전쟁에 임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낙담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지난주에 ‘내 이름은’이라는 한국 영화를 보았습니다. 1949년의 제주의 4·3 사건을 겪으며 잃어버린 기억,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제주의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8살의 어린 소녀가 60세가 되어서야 찾은 이름은 영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는 구원의 길을 알았다면, 이 여인은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오십여 년을 과거에 사로잡혀 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주의 4·3 사건을 겪지는 않았지만, 어두움에 사로잡혀 산 것은 나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중요하고, 내 이름이 중요하고,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뜻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웠고, 여겼던 삶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구원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이름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구하는 인생을 살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 이름 안에서 내 이름을 다시 해석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의 이름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여호와 이레/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닛시/승리의 깃발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 샬롬/평강의 하나님, 여호와 삼마/거기 계시는 하나님, 엘로힘/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소개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제가 만난 하나님은 엘로힘,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의 백성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구원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큐티 묵상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나를 무너뜨리려는 세상의 공격에 엘로힘,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며, 그들에게 조금의 자리 조차도 내어주지 말고, 흔적까지 끊어내야 겠다고, 도망가지 않고 맞붙어봐야 겠다고 결심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싸워 주실 것이 믿어집니다. 시편기자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해 봐야겠다고 적용합니다.
사역팀이 자신의 아들에게 불이익을 준다고 불만을 토로하셨던 자매님을 만나 하나님 이름으로 나의 부족함에 대해 사과 드렸습니다. 나의 이름을 붙잡고 있었다면 만나자고 연락도, 만나서 사과도 하지 못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으니, 나의 이름쯤은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이번엔 나에 대한 비판을 카톡으로 보내왔던 다른 자매에게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함으로 그의 청에 응했습니다. 나의 이름을 신뢰했다면, 만나지 않았을 수도, 만나서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이름을 붙잡았으면 억울했던 마음, 섭섭했던 마음을 쏟아내야 직성이 풀렸을것 같은데,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했더니 아무말 하지 않고 사과를 받아주고 예전으로 돌아갈수 있을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참으로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죄를 끊을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두 번째로 다가온 말씀은 19-20절 말씀입니다.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라는 말씀을 읽으며 의의 문, 여호와의 문은 어떤 문인가요, 하나님께 질문 드립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양의 문’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양의 문이다”라고 비유로 말씀하시며, 자신이 양들을 보호하고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통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의의 문, 여호와의 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열어 주시고 그 문에 들어가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집의 머릿돌 되게 하신 하나님, 사람들이 쓸모 없다고 버린 것을 가장 귀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 죄로 가득한 인생을 의로운 인생으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 실패와 절망을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경험할 기회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나의 인생에서도 동일한 하나님을 경험해 오면서 오늘 이 묵상의 글을 적습니다. 나의 인생이 하나님 손에 들렸을 때 비로소 내가 버려진 돌이 아니라 주춧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인생을 쓸모없다고 여겼던 나의 오만이 그때는 오만인 줄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잡으셨을 때 비로소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고아인 줄 알았는데 친부모를 찾은 자의 심정이었습니다. 매일 큐티를 하는 것은 날마다 여호와의 문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 구원에 대한 감사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호와의 문에 들어가 감사드립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십니다.
세 번째로 저에게 다가온 말씀은 24절, 이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라는 말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이라 기뻐하라는 말씀을 읽으며 나의 기쁨의 이유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된다면, 나는 날마다 기뻐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주십니다. 나의 마음에 따라 기쁘고 슬픈 인생을 살았고 지금도 완전히 졸업하지는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나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나라 하나님을 따라간다면, 오늘이 나의 날이 아니고 하나님의 날이라고 여긴다면, 하루 하루가, 모든 시간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날이고, 나의 인생의 모든 날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날들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들을 기뻐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고 생각해 보니, 이 순간이 더욱더 소중해집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이니 이 순간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겠습니다!! 라고 소리쳐 봅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호와의 손으로 권능을 베풀어 주셔서 저의 삶 속에 구원과 감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호와의 문에 들어가게 해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머릿돌로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눈으로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빛을 비추어 주신 하나님, 하나님 나라의 제단 뿔에 저를 단단히 묶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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