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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나눔

제  목 [] 산 아래

등록일 2026-02-25
작성자 꿈꾸는자

본문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했던 산 위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산 아래의 세상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한 아버지가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질로 심히 고생하는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간청하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들의 병을 고치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를 한탄하시며, 그에게 아들을 데려오라 하시고, 귀신을 꾸짖으시니 귀신이 아이에게서 나갑니다. 자신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고 답하시며,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은 죽음을 당하고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예언하시고,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근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다른 사람을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성전세를 내십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말씀은 14절-15절,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말씀중에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말하는 한 아버지의 간구 입니다. “제 아들의 간질병을 고쳐 주세요” 라고 하지 않고 “제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차이는 무엇일까 묵상해 봅니다. 아들의 간질병을 고쳐 달라는 말은 간질병을 고쳐 줄 수 있는 대상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무 능력이 없으니,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달라는 믿음의 고백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말은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대상과 불쌍히 여김을 받는 대상, 둘 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게다가 불쌍히 여김을 받는 사람의 태도가 보입니다. 낮을 때까지 낮아진 겸손과 비워질 대로 비워진 자아일 때만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시길 간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득 모든 것을 다 잃고 길거리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홈리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아무리 사랑해도 아이들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능력이 느껴집니다. 악한 영을 대적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무기력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능력 없는 신앙생활에 익숙해져, 마치 무능력과 무기력이 당연한 듯 살아가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이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환경 속에서 점점 무기력해져 가고 있는 것은 겸손이 아닌 죄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하시는 일을 왜 제자들은 하지 못했을까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왜 나는 하지 못할까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에게 동일한 능력을 주셨는데, 왜 예수님처럼 그 능력을 사용할수 없는 것일까요. 제자들의 문제는 무엇이고, 저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못해요’, ‘안 돼요’의 사이클을 깰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해요’, ‘가능해요’의 선순환으로 바꿀 수 있을지 하나님께 질문드립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베드로의 고백처럼 주님과 교제하며 영적인 충만함 속에서 사는 산위의 삶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로 내려오면,인생의 고단함과 무게들, 고난과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능함과 무력함 속에 길을 잃곤 하는 산 아래의 현실 속에서, 오늘도 다시 길을 찾기 위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주신 답을 찾아봅니다. 예수님이 귀신들을 꾸짖으셨다고 합니다.  그 예수님이 나도 꾸짖으시는 것 같습니다. 너의 무기력을 허용하지 말고, 무기력을 꾸짖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지난 10장 1절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17장 20절에, 주님이 하시는 일을 왜 우리는 하지 못할까요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다” 라고 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옮길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어지는 두 말씀을 읽다가, 작은 믿음과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은 같은 말 같지만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작은 믿음은 능력이 없고, 겨자씨 한알의 믿음은 능력이 있는, 크기는 비슷해 보이지만 결과는 완전 다른 두 믿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궁금해 집니다. 


마가복음 9장 28-29절에서, 마가는 이 장면을 다른 각도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을까요? 라고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답하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10장에서 17장까지 오는 동안, 제자들은 점점 기도를 소홀히 하게 되었고, 그들의 믿음은 점점 더 작아진 것 같다는 추측을 해 봅니다. 그러나 반면에 겨자시 한 알의 믿음은, 처음에는 아주 작은 씨앗이었지만, 그 작고 단단한 씨앗안에 생명이 숨어 있었고, 씨가 뿌려저,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땅 위로 싹을 띄워서, 점점 더 커지고 성장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점점 더 작아지는 믿음과 점점 더 커지는 믿음의 차이는 ‘기도’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능력을 행하는 믿음에는 후퇴가 없고, 오직 전진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주신 능력만 믿고 기도와 훈련을 소홀히 하여 주신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반면 교사 삼아야겠습니다. 오히려 눈에 보기에 보잘것없는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살아 있는 믿음, 생명력을 담은 믿음, 살아 계신 주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현재형의 믿음, 성장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결단하며 기도합니다. 


두번째로 다가온 말씀은 26-27,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안 하는, 안 해도 되는데 하는… 세상의 논리와 방식과는 반대인 예수님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그 당시 유대인 성인 남자는 매년 반 세 걸의 성전세를 냈습니다. 왜 성전세를 내지 않는지 묻는 성전세를 걷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왕의 아들은 세금을 면제 받는다고 비유로 답하시며,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 베드로에게 세금을 내도록 명하십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쪽을 선택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상대방이 실족하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그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사랑없음과 바로 마주합니다. 저는 왜 이렇게 생각할까요. 왜 제 안에는 사랑과 배려가 없을까요. 하나님과 저 자신에게 한탄을 쏟아냅니다. 상대방의 실족은 너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고, 너와 연관이 있다는, 그래서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외면하고만 싶습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 실족하신 한 분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한 자매가 저에게 왜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가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을때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정당성’ 이었습니다. 길을 잃어 집을 나간 게 아니고, 고의로 의도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며 집을 떠난 사람을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상황의 합리화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믿음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능력이 나타나는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시다가 뜬금없이 성전세를 말씀하시는 예수님, 믿음과 성전세가 어떻게 연결되지?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묵상을 하다보니, 능력이 나타나는 믿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랑으로 열매 맺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기로, 주어진 자유를 누리지 않기로, 분명한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결국 사랑을 행하는 것임을 예수님을 바라보며 깨닫게 하십니다. 성전세를 내기로 한 결정이 그들을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였지만, 결국은 그 선택이 나와 너를 위하여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27절의 예수님을 만납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결국은 나 자신을 배려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한 것에 대한 유익이 결국 나에게 올것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결국은 길을 잃어 집을 나갔건, 고의적으로 집을 나갔건, 그분의 의도가 중요한게 아니고, 나에게 사랑이 있느냐, 하나님이 이미 나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능력이 나에게 살아 있느냐의 문제인것을 깨닫게 하시니, 나의  무능한 작음 믿음을 주님앞에서 회개 합니다. 겨자 씨 한 알의 생명력 있는 믿음의 씨앗을 저에게 뿌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질수 있는 믿음, 못할것이 없는 믿음, 주님이 나에게 약속하신 믿음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내어, 무성한 가지로 성장하고,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쉴쉬 있도록 열매맺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 것이 사실은 나의 본심임을 기억하며, 본심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능력이 나의 삶에서도 나타나도록 다시 기도를 시작해야 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의 믿음이 예수님이 책망하시는 작은 믿음인지, 예수님이 칭찬하시는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인지, 점검해 보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능력을 잃어버린 생기 없는 작은 믿음이더라도, 기도의 시간들을 더하면, 생명력과 능력을 머금은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산도 옮기고, 몸과 마음의 병도 고치는, 못할 것이 없는 믿음의 싹이 나고 열매를 맺기까지 자라나도록 끝까지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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