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보지 못하느냐
본문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고난주간의 셋째 날의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 즉 세상의 종말과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21장 12절에서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정화 작업을 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 날, 예수님은 성전에 다시 들어가시는 길에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셋째 날 다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성전에 들어가신 내용이 어제 본문까지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 머무르시며 끊임없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책망하셨고, 그들에 의해 본질이 변질되고 우상화된 성전은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성전을 나오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 됩니다. 성전이 황폐해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납득되지 않았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성전을 가리켜 보입니다. 이렇게 성전이 멀쩡한데, 어떻게 무너진다는 말씀이세요? 제자들이 성전을 가리키는 동작에서 그들의 마음에 품은 질문들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여전히 같은 답을 하시자, 이번에 제자들은 그렇다면 어느 때에 그런일이 있을지, 그 때에는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를 예수님께 질문하고, 예수님은 사람의 미혹을 조심하라고 답하십니다. 난리, 소문, 대적, 기근, 지진이 있을 것인데 이 모든것은 재난의 시작일 뿐이라고, 환난을 받고 미움을 받고, 실족하게 되고, 미워하게 되며,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게 될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며,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그 끝이 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에게 처음 다가온 말씀은 6절,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이 아니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난리를 영어로 보니 전쟁입니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함으로써 일어난 전쟁이 전 세계 전쟁으로 번져가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전쟁과 전쟁의 소문을 매일 듣다 보니 마음이 두려워집니다. 시민권자 이면서도 여전히 이민자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저에게는 이민 단속이나 ICE 의 행보, 단속 중에 무고하게 죽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난리와 소란, 불법들에 대하여 국가의 정의는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의 심판은 어디에 있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런 일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끝이 올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향해 가는 고난의 행보는 예정되어 있는 일이고, 십자가에서 죽으심도 예언된 일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고 부활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는 저도 고난의 행보 중입니다. 사람들로부터 크고 작은 공격을 받고 의기소침해지다가 화가 나다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누렸던 마음의 기쁨은 온데 간데 없고 자꾸만 나를 끓어내리려는 중력에 끌려가다가 온몸으로 거부하다가 무기력하게 반복하고 있습니다. 리더십에 대한 공격을 받고, 믿는 자의 본을 보이지 않는다고 공격을 받고, 왜 상의를 해야 하는지 따져 묻고, 왕따를 시킨다고 분노를 퍼부으며 사람들이 떠나갑니다. 맘대로 폭격을 해 놓고 떠나 버리는 전투기들 같습니다. 문제는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믿었던 사람들의 공격이어서, 더 힘든것 같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설명하고 싶은 의욕조차 상실되어 가는 것을 느낍니다. 지난 10년의 시간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 사역을 계속할 희망을 잃어갑니다. 사람을 원망하다가도 말씀 앞에 서면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죄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니, 원망조차 할 수 없어 길을 잃습니다. 사람에 대한 원망이 나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니, 이래저래 망해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길가로 불러 복음을 말씀하실 때, 차지할 자리를 논하는 제자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다가, 더 생각해 보니 그 한심한 제자들과 내가 똑같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일관성 있게 한가지,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나는 여전히 변함없이 나의 상처, 미움, 분노, 억울함, 섭섭함을 말하고 있는것은, 복음보다도 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증거니까요. 아직까지 나중된 자인 줄 착각했는데 어느새 먼저 된 자가 되어 버린 나, 이만큼 신앙생활을 해 오고 있는데 변한 게 없다는 생각에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심정이 됩니다. 예수님과 동상이몽하는 제자들, 세상을 바라보느라 복음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제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동안 열두제자를 양육하셨는데 마지막까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역은 실패 하신것일까 잠시 생각 하다가, 부활이 없었다면 그랬겠다, 그러나 부활이 있어서 예수님의 제자양육은 실패로 끝나지 않을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사역에 실패한 것 같은 나의 심정도,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무기력해진 나의 마음도, 이 모든 고통들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섭섭함, 원망, 낙담, 분노, 우울까지, 나의 인간적인 모든 감정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나의 의가 살아 있어서 경험하는 이 감정들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로 결정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길가로 부르시어 복음의 말씀을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청종함으로 세상에 붙잡힌 것들에서 풀려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쓰시겠다는 말씀으로 묶여 있던 목줄이 풀어진 어린 나귀처럼, 나를 옧메이는 묶임들이 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를 기도합니다. 제자들의 동상이몽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역을 완수하신 예수님, 사람이 아닌 예수님을 따라가기로 적용합니다.
다음으로 저에게 다가온 말씀은 12절-13절 말씀,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불법이 무엇일까 말씀에서 찾아봅니다. 그때가 오면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잃어가고, 서로 배신하고 미워하며,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합니다. 악함이 성해지는 그때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사랑을 잃어 가고 차가워진다는 말씀을 읽다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그때가 지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는 불법이 성해지면 사랑이 식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 같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 마음에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면 내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 주 내내 마음의 사랑이 고갈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내가 저지른 불법이 있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내안에 불법이 성했기 때문에, 빚을 탕감해 주었던 임금과, 늦게온 일꾼에게도 동일한 임금을 주었던 포도원 주인에게 있었던 ‘불쌍히 여기는 마음’, 천국의 마음이 내 안에 고갈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내 안에 성했던 불법은 서운해하는 마음, 용서하지 않는 마음, 우울을 허용했던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2주 주말을 연속으로, 한 번은 가족들과 한 번은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산 위에서 내려오고 싶어 하지 않은 베드로처럼, 돌아와 보니 산 아래의 현실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피하고 싶어서 자꾸만 산 위로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산 위에서 받은 은혜를 산 아래의 현실 속에서 나누라 하셨는데, 요나처럼, 나의 판단으로 모진 마음을 먹었던 나의 모습을 주님 앞에서 회개합니다. 거저 받은 은혜를 거저 나누라 하셨는데, 받은 은혜를 내 안에 가두고, 흘려 보내고 싶지 않았던 불순종을 주님 앞에서 회개합니다. 내 안에 사랑이 식어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 너무도 괴롭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내 안에 가득 차 올라서 사소한 감정 싸움들을 덮고도 남기를 기도 드립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명심합니다. 그러나 끝이 언제일지도 모르면서 끝까지 견디기는 너무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달리기에도 결승점이 있고, 일 년에도 연말이 있습니다. 구원을 꼭 얻고 싶은데, 끝을 모르며 끝까지 견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질문 드립니다. 문득 바리새인들의 악의에 찬 질문들에 언제나 말씀으로 답하셨던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사탄의 유혹에도 말씀으로 대적하셨던 예수님의 지혜를 생각합니다. 끝을 모르는 불안에 대하여, 끝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날 낙담에 대하여, 날마다 말씀으로 대적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주십니다. 날마다 큐티를 하여야 하는 동기가 더욱더 굳건해집니다. 그날의 불안은 그날의 말씀으로 쳐내고, 그날의 낙담도 그날의 말씀으로 버리고, 그날의 우울도 그날의 말씀으로 쫓아내기로 적용합니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 한 달, 일 년이 가다 보면, 끝까지 견디게 될 것이고, 끝까지 견디면 주님의 약속대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오늘도 복잡한 심령을 정리해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48년된 견고한 헤롯 성전이 어떻게 무너지겠습니까 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 저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전 중심을 외치며 결국 자신의 의를 쫓아가는 바리새인들의 모습 속에서, 교회 중심을 외치며 교회 안에서 나의 의를 외치는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주님 앞에서 회개합니다. 괜찮은 신앙인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심판이 늘 곁에 있음을 기억하는 제가 될 수 있도록, 언제나 깨우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를 지키며,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종말의 징조에 따른 고통을 인내하며,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뜻에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NT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