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손해가 있을까 하여
본문
룻기 4:1-6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장로 열 명을 청하고, 자신보다 나오미에게 더 가까운 친족인 기업 무를자에게 그가 죽은 엘리멜렉의 땅을 사고 룻을 아내로 맞이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다. 자신의 손해를 염려한 그는 기업을 무르지 못하겠다고 대답한다.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6). 룻기에 ‘아무개로’로 기록되어진 기업 무를자의 답변이다. ‘내 기업’과 ‘나를 위하여’ 두 단어를 읽으며, 왜 그가 손해를 걱정했는지 알 것 같다. 자신이 소유한 땅이 하나님 주신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것을 기억했다면, 자신을 위해 기업을 무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여’ 기업을 무르는 것이라는것을 깨달았다면, 그는 손해를 계산하지 않았을 것 같다.
타락한 사람을 경멸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을 존경하며 손해를 봐도 맹세를 지키며(시편 15:4). 성경은 맹세가 손해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신앙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세상적 손해를 감수하고, 거룩한 손해를 택하라 말씀하신다. 손해는 계산하지 않으면 더 이상 손해가 아닐 것 같다. 세상의 안경으로 보면 손해지만 하나님 나라의 안경으로 보면 이득인 것이다.
어제 저녁에는 내키지 않는 저녁 식사를 대접해야 했다. 상황은 나가야 하는데 마음은 안 나가고 싶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손해를 보기 싫어서였던 것 같다. 쉬고 싶은 저녁 시간을 쉬지 못하는 손해, 마음을 추스려 반가운척 해야하는 감정적 손해, 식사를 대접하는 재정적 손해까지,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계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본능적으로 계산하는 나에게 계산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나의 손해와는 비교도 안 되는 예수님의 거룩한 손해를 묵상한다. 약간의 금전적, 시간적, 감정적 손해가 아닌,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거룩한 손해를 기억한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소소한 손해들을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주신다. 시간이 없다고 피하지 않고, 이유를 대며 약속을 캔슬하지 않고, 내 마음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어제 식사의 자리를 지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손해를 계산하는 삶을 살다가 손해를 계산하지 않는 삶으로 옮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인생에 손해와 이득을 계산하시는 분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인정한다. 손해를 계산하지 않으므로 나의 인생에 손해를 없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오늘도 손해를 계산하려는 나의 본능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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