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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마지막까지 남겨진 긍휼

등록일 2026-09-16
작성자 바람결

본문

역대상 10장에서 사울은 참 비참하게 생을 마친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아들들을 잃고, 자신도 중상을 입은 끝에 스스로 칼 위에 엎드려 죽는다. 그의 머리는 잘리고 갑옷은 빼앗기며 시신은 모욕당한다. 성경은 그의 죽음을 단순한 전쟁의 패배로 기록하지 않는다. 여호와께 범죄했고 말씀을 지키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께 묻기보다 다른 길을 찾았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전쟁의 패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삶의 결과였다.


그런데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사울의 마지막에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등장한다. 나의 마음이 그 부분에 머문다.


길르앗 야베스 모든 용사들이 일어나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곳 상수리나무 아래에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일간 금식하였더라(대상 10:12)


길르앗 야베스는 사울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가? 궁금하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둘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


오래전 사사기 시대에 베냐민 지파가 거의 끊어질 위기에 놓였을 때 길르앗 야베스의 여인들이 베냐민 사람들의 아내가 되어 그 지파가 이어지게 되었다. 성경은 사울의 어머니가 길르앗 야베스 출신이었다고 직접 말하지 않지만, 베냐민 지파와 길르앗 야베스 사이에는 오래된 혈연적 연결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어머니의 친족일꺼라 추측되니 그들의 긍휼의 관계가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움직였다. 이 사실만으로 그들의 칠일간의 금식과 애도가 다 수긍되지 않았다. 그래서 길르앗 야베스의 인연이 단순히 친족관계일까 궁금하여 찾아보니 길르앗 야베스는 사울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었다. 과거 암몬 왕 나하스가 이 성읍을 위협했을 때 사울이 군대를 일으켜 그들을 구해 주었다.


기브아 사람들이 야베스에서 온 전령들에게 말하였다. '길르앗의 야베스 사람들에게 가서, 내일 햇볓이 뜨겁게 내리쬘 때쯤에는 구출될 것이라고 전하여라'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그들이 모두 기뻐하였다.(삼상 11:9, 새번역)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포위하며 모욕적인 조건을 내걸었을 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 소식을 들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했고(삼상11:6) 그는 이스라엘을 일으켜 그들을 구해냈다. 사울은 길르앗 야베스에 큰 은혜를 베푼 적이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같은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사무엘 부분을 찾아 그때를 좀 더 자세히 보고싶어졌다.

사무엘상에서도 그들이 사울의 죽음을 듣고 곧바로 움직였다고 기록한다.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모든 장사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가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거기서 불사르고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 (삼상 31:11-12)


밤새 걸어갔다. 그 표현이 마음에 남는다.


그들은 사울의 실패를 몰랐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실패가 자신들이 그에게 받았던 은혜까지 지워버리지는 못했다

하나님 앞에서 그의 불순종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순간에 모든 관계까지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가 과거에 베풀었던 구원의 기억과 오래된 관계가 남아 있었고,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하였다. 그들은 칠일간 금식하며 애곡했다.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이 구절을 묵상해본다. 


이 장면을 보며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하게 된다.

죄의 결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울은 자신이 선택한 불순종의 결과를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심판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한 인간을 완전히 버려진 모습으로 끝내지 않으셨다. 그의 시신을 거둘 사람들을 남겨 두셨다. 하나님의 긍휼은 때로 문제를 없애 주는 방식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 이미 벌어진 결과를 되돌려 주지는 않으시지만, 그 결과 한가운데서도 사람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누군가를 남겨 두시기도 한다.


사울의 삶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의 마지막에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있었다.

내 삶에도 그런 긍휼이 있었음을 돌아본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내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야 했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손을 남겨 두셨던 때가 있었다.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버려지지 않았고, 길을 잃은 순간에도 누군가를 통해 다시 일어설 여지를 주셨다.


오늘 나는 그 긍휼을 기억하고 있는가.


누군가 마지막에 실수하면 그 사람의 모든 시간을 그 실수 하나로 다시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가. 관계가 틀어지면 그 사람이 내게 베풀었던 선한 것들까지 지워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실망이 크다는 이유로 과거의 은혜까지 없었던 일처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또 누군가에게 하나님이 남겨 두신 긍휼의 사람이 되어 주고 있는가.


사람은 한 장면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울에게는 불순종도 있었지만 길르앗 야베스를 구했던 날도 있었다. 실패한 마지막도 있었지만 누군가의 삶에 남겨놓은 선한 흔적도 있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그 흔적을 기억했다.

그들은 사울의 죄를 부정하지도 않았고 그의 실패를 미화하지도 않았다. 다만 실패가 그 사람의 전부라고 말하지 않았다. 왕관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돌려받을 수 없는 순간에도 이전에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마지막 예의를 다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의 마지막 모습만 붙잡고 그 사람의 모든 시간을 재단하지 않는 사람. 관계가 달라졌다고 해서 받은 은혜까지 지워버리지 않는 사람. 잘못은 잘못대로 보되, 그 사람이 내 삶에 남긴 선한 흔적도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은혜를 기억한다는 것은 상대를 미화하는 일이 아니라, 내 기억을 정직하게 지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내가 떠올리는 사람들 가운데 실망이나 서운함 때문에 그 사람의 좋은 시간까지 지워버린 사람은 없는지 돌아본다.



주님, 잘못의 결과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시되 그 자리에서도 긍휼을 거두지 않으시는 주님을 보게 하소서. 내가 받은 긍휼을 기억하며, 누군가의 무너진 자리 곁에 남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람의 한 장면만 보고 쉽게 결론 내리지 않게 하소서. 잘못을 분별하는 눈과 함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마음도 잃지 않게 하소서. 관계가 끝나는 순간에도 감사할 것을 기억하고, 마지막까지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 성숙함을 제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적용: 잘 지내다가 다소 소원해졌던 그분에게 연락해서 안부 여쭙기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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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자님의 댓글

꿈꾸는자 작성일

잘못을 분별하는 눈과 함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마음도 잃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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