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2 미국 일리노이주로 부모를 따라 이민 오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전자 공학을 공부하고 반도체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을 예수님을 뜨겁게 만났습니다.  그러나, 직장에서 인정도 받게되고,  사업하는 남편을 만나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처음에 뜨거웠던 신앙심이 점점 식어가면서  형식적이고 지극히 중심적인 신앙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러다가 2005 불어닥친 경제불황의 바람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격게되었고,  둘째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 두게 공허감과 아이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나가던 저의 인생은 깊은 흑암속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도 혼란해져서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마구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던 , 같은 교회 집사님을 통해  큐티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든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없어서  답답했고, 심령이 메말라 있었던 터라  큐티는 마치 생수를 마시는 것과 같았습니다. 

2006 9 어느 , 잠잠히 침묵하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열왕기하 2 19절에서 22절의 말씀을 통해 마음에 다가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말씀은, 당시 우리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을 하나님과  남편때문이라고  원망하고 있는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도 남편도아니고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나의 겉모습은 성읍의 터와 같이 완벽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근원, 생명의 근원인 나의 마음이 좋지 못해서 열매가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온전치 못한 마음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깨닫고 회개를 하게 되었고, 원망하고 불평하던 입도 다물게 되었습니다.   또한, 엘리사가  소금을 근원에 던져 정결케 하는거 처럼,  하나님께서는 온전치 못한 마음을 고치시려고 고난을 통해 훈련하신 다는 깨달았습니다.   말씀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깨달으니 마음도 한결 평안해졌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경제적인 압박이 지속되는 현실은 저의 마음을  불안하고 두렵게 했습니다.  아이들학비와 자꾸만 늦어져 경고를 받는 집값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다른 payment  제대로 내지 못할 형편이 되니 당장이라도 수치스러운 일을 당할 까봐 몹시 두려웠습니다.   어느 마가복음을 묵상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혹시 남편이 payment 못해서 오는 전화가 아닐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자 심장이 심하게 뛰며 두근거렸습니다.  전화를 받는 대신 마가복음 5 36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오면서 주님의 생생한 음성이  마음 속으로부터 들려왔습니다.

 예수께서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사랑하는 딸이 죽었다고 전해들은 회당장 야이로의 두려운  마음을 이미 아시는 예수님께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이,  payment  하라는 독촉전화 일까 보아 몹시 두려워 떨고 있는 저에게 하시는 주님의 살아계신 음성으로  들려와  위로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곁에서 나의 처한 상황을 듣고 있다는 믿음 생기면서 나를 삼킬 같던 두려움이 잠잠해지며 평안해 졌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혈루증 앓는 여인을 만나심으로 인해 야이로의 딸을 보러 가시는 길이 잠시 지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고,  저의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도 이처럼 잠시 지체될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장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힘으로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주님의 시간까지 기다릴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하신 말씀은 6년이 지난 2012 10,  망할 같았던 샌디에고에 있는 남편회사가 안정이 되어 드디어 이곳 얼바인까지 있도록 인도하여주셨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격는 , 누가복음을 묵상할 때였습니다.  회사를 그만 두자, 또박또박 들어오던 월급도 없어지고 남편 회사도 어려워지다 보니,  저는 매일  부족한  때문에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전에 자유롭게 샤핑하고 외식하며 좋았던 때가 생각나며 갑자기 남편이 원망스러워졌습니다.  다시 그러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기 원하는 저에게 주님은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있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12 15 말씀을 주시며  나의 우상이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저는 사람의 생명이보다 귀중하다는 주님의 말씀으로 인해 물질에 대한 나의 욕심을 회개하였습니다.   남편을 이상 원망하지 않고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를 주는 대로 만족함을 배워나갔고 부족함 가운데서도 거르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에 대한 훈련뿐만 아니라  집안 살림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통하여 저의 온전치 못한 마음을 계속해서 다루셨습니다.  둘째아이를 낳기 전까지 엔지니어라는 professional  분야에서 15년동안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다가 집안 살림을 하자니 속상하고  자존심도 몹시 상했습니다.  회사 명함에 찍혀 있던 이름과 지위가 없어지니 존재도 무의미해지는듯 했고,  서툴은 집안 살림은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비웃는 같았습니다.  더군다나 나처럼 예쁘고 똘똘한 여자는 본적이 없다며 가끔씩 칭찬해 주던 남편마저도 자주 화내고 성질부리는 저를 이상 감싸주지 않고 등을 돌리며 차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내가 집에 있는 가정주부라고 무시해? “ 하며 섭섭함과 배신감에 갑자기 차가워진 남편이 괘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 예레미야 13 18 말씀은 저의 죄악된 모습을 보게 하였습니다.  너는 왕과 왕후에게 고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말씀은 15년동안 마치 왕후처럼 인정받으며 여자로서 엔지니어자리에 있었던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기회만 되면 하찮은 집안 살림을 뒤로하고 다시 남들이 인정해 주는 영광의 자리로 화려하게 복귀하고 싶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으니 이제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말씀이었습니다.   나의 강한 자존심과 교만함으로 인해 심각한 죄악의 상태가 되기 전에 지금 낮추어진 상황을 인정하고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말씀대로 왕후의 자리에서 스스로 낮추어 앉기로 결단하고, 높아졌던 나의 마음과 강한 자존심때문에 남편을 우습게 여겼음을 회개했습니다.   하찮케 생각했던 집안 살림과 가정주부라는 직업을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위치요 역활이라는 것으로  겸손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  적응해 나가다가도 남편이나 주위의 사람들이 마음을 섭섭하게 마다,  너는 이런 집안 사람이 아니야, 자존심도 없니?” 하며 나를 참소하는 음성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큐티로 주신 말씀들은 자존심과의 싸움에서도 이길수 있는 힘이 되었고,  이제는 사람을 만나도 자신있게 집에서 살림해요하며 웃으며 할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습니다.

 2009년에는 하나님께서 큐티 인도자라는 거룩한 직분까지 주셨습니다.  빌레몬서 1 11,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말씀을 통하여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왕후의 자리에서 자존심과 교만함을 내세웠을때에는 주위의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무익한  존재에서,  이제는 큐티 인도자로 세워 유익한 존재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저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다시 빚으시고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남편의 차가워졌던 마음까지도 만져 주셔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심뿐만 아니라 자식에 대해 세상적 욕심도 많았던 저를 첫딸 지혜를 통하여  다루어 나가셨습니다.  아이를 임신하였을 , 아이에게 맞는 이름을 달라고 기도하던 ,  당시 잠언을 읽고 있었던 저에게 잠언 3 15절의 말씀을 주셔서,  지혜라고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지혜라는 이름을 불러 주셨다는 우월감 저는 아이가 남들보다 뛰어난 아이일 것이라 착각하며 기대를 가지고 이것 저것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1학년에 들어가면서 저의 높은 기대는 실망과 분노로 바뀌며 딸아이를 망가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리숙하고 착하기만 딸아이가 눈에는 한참 모자라 보였습니다.     100 맞는 시험을 실수로 많이 틀려오고  이해력도 느린 같아서 가르칠 마다 속을 자주 뒤집어지게 만들었습니다.    ACT 수학 점수 만점에, 전자 공학을 공부한 깐깐한 저의 성깔은 인내하지 못하고 아이를 향하여지혜라고 부르는 대신 바보야!”  라고 부르며 큰소리로 아이를 야단치며 울렸습니다.

딸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했고 툭하면 울었습니다.  어느 , TV에서 잡은 남자가 분노에 무서운 얼굴로 미친 듯이 싸우는 모습을 우연히 딸이,  엄마, 사람 엄마같애라고 말하는 아이 말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가 야단치는 나의 말과 모습에서 저런 분노와 광기를 느꼈다고 생각되자, 저는 주님 앞에 엎드려 통곡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딸아이 이름이 지혜라면서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그래 보여요…. ”  하며 울면서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는 역대하 2 12 말씀 묵상을 통하여 지혜라는 이름에 대하여 저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셨습니다.                                                                                                 

  가로되 천지를 지으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는 송축을 받으실찌로다 다윗 왕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시고 명철과 총명을 품부하시사 능히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을 건축하게 하시도다

두로 후람은 이방인이면서도 다윗 왕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명색이 하나님을 믿는 저는 아이의 이름을 지혜로 불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는커녕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이를 지혜라 부르신 이유는 여호와를 위하여 지혜로 부르신 것이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후, 저는 아이를 하나님을 아는 지혜로운 아이로 키워서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하며 살기를 소망하기보다는  나를 위한 자랑스러운 딸아이로 키우려던 욕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직접지혜라고 부르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함부로  바보라고 부른 것에 대해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도  엄마의 실수와 부족함을 용서해 달라고 말하였더니 동안 많이 서러웠던지  아이도 고개를 끄떡이며 울었습니다.

지혜라고 부르신 하나님 마음을 알고나니, 눈에 그렇게도 모자라 보였던 딸을  믿음의 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의 연약함이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만날 있게 하는 축복임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래서 두번씩이나 첼로 오디션에서 떨어진 딸에게 ,  지혜야, 하나님은 너를 지혜로 부르셨어.  기억해하며 오히려 실망하는 딸을 다독여 주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몰라 망할 인생을 복된 인생으로 창조해 나가시는 하나님을 큐티를 하면서 만난지 어느 8년이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내가 사랑하는 세상의 것들로 인하여 혼돈스럽고 공허하고 어둠에 있었던 저를,  큐티라는 줄기 빛으로 찾아오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창조해 나가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