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모임의 김미연입니다.

 

 

저는 대학시절에 큐티를 처음 접하기는 했지만 , 큐티를 생활화하지는 못했습니다.  결혼해서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는 더~ 큐티할 생각도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다보니 육신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바쁜 사업스케줄로 집에 늦게 들어오고 출장을 자주 다니는 남편에 대한 섭섭함과 불만도 자꾸 쌓여갔습니다.  결혼에 대한 깊은 회의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런 마음이나 감정을 남편에게 조금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원망이나 불평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말 한마디 못하고  다시 속으로 삼키기가 일쑤였습니다.  타고난 소심한 성격으로, 어렸을 때부터… 말로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참는 것보다…. 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든 안 좋은 감정들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안으로만 쌓여갔습니다.   그저 입다물고 아무 말 안하니까 겉으로 보기엔 평화스런 가정을 유지하는 것 같았으나,  저의 속은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외로움, 답답함, 죄책감, 자기연민으로 가득해서 점점 우울해져가고 시들 시들 병들어 갔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김은애 권사님을 만나게 되어 큐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제인생의  Turning Point가 되었습니다.  큐티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져주시니

내면세계가 건강해지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아내와 엄마의 역활을 잘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저를 touch하시고 변화 시켜준 말씀과 삶을 몇 가지 나누겠습니다.

 

몇 년전,  민수기24 18절을 묵상할 때 였습니다.  주술사 발람이 모압왕 발락이 원하는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장래를 축복하고 예언하는 말씀을 읽는 중에  “이스라엘은 용감행동하리라” 라는 말씀 앞에 제 눈이 계속 멈추어졌습니다.   한참 동안 그 말씀만 천천히 속으로 거듭 읽고 있는데,  저의 이름을 부르며 저에게 하는 음성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연이는 용감히 행동하리라”라고 말이지요.    용감   행동 이런 단어는 저와 아주 거리가 먼 단어여서, 저는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가 용감하게 행동하게 될꺼라고 ..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어 줄꺼라고 …. 하셨습니다.  

 

저는 그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마음에 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후에도 큐티 할 때 마다  말씀으로 저를 계속해서 격려하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제 삶에 용기를 내어 행동으로 옮기는 일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은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나의 감정들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교회를 단 한번도 안가본 막내딸 친구 엄마에게 전도도  해보았습니다., 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남동생부부 결혼위기때는  처음, 혼자, 비행기타고  가서 동생부부를 위해 권면의 말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말씀의 힘으로 용감하게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금요모임의 인도자를 하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도 처음엔, ‘ 나같이 말못하고 소심한 사람이 무슨 인도자까지나…...’ 하며 주저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예레미야1장을 묵상하며, 선지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앞에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고 힘을 얻어  큐티모임 인도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말씀의 힘으로 나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별 큰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던 저의 가정에 제 작년부터  이런 저런 일들이 자꾸 일어났습니다.

 

4년전에 부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신 시아버님께서 제작년8월 폐경화로 쓰러지시고. 1년정도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그런 의사의 말에도 놀라지 않으시고, 팔십 넘게 살았으니 미련없이 어머님곁으로 빨리 가고 싶다고 초연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러시던 아버님께서 한국에 계신 어떤 아주머니를 소개 받으신후  몇개월 교제하시더니 그분을 새 부인으로 맞이하시겠다고 발표를 하셨습니다. 

 

아버님의 그런 결정은 저희 자식들과 가까운 주변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버님과 사귀시는분께서는  나이 차이도 많이나셨고,  이제 1년도 채 못 사실 병드신 아버님을 사랑한다고 하시는데, 우리가족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두분의 재혼을 완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자식들간에도 아버님재혼 문제때문에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 그 아주머니가 영주권을 얻기 위해 미국에 오려고 나이드시고 병드신 아버지에게 접근하는거다.  유산에 욕심을 내는 거다…” “그래도 어떻게 하냐  손해보는일이 있더라도,  아버님이 원하시는대로 해드리자 “  하고 말이죠.  그러다 보니, 병드신 아버님과 자식간에 그리고 형제간에 서로 다른 의견으로 집안에 불화가 불거졌습니다.   심한 말까지 오가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저의 남편은 아버님의 그 재혼을  막는것이 아버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저는 며느리로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고민스러웠고 남편말에 왔다 갔다 혼동스러웠습니다.  그 때, 큐티말씀이 골로새서였는데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저는 이  말씀을 따라야 하는 모범으로 받고,  마음을 단단히 가지고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였습니다.  “만약 그분이 사기성을 가지고 아버님께 접근한다 하더라도  아버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쟈.  지금 중요한건 아버님의 건강이고 더이상  병드신 아버님을  힘들게 하지 말자” 구요.  저의 말에 남편은 조금씩 뜻을 굽히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두 분은 재혼하셨습니 다.  그러나 그동안  서로 주고 받은 많은 상처 때문에 부자간에  형제간에  서로  만나기를 회피하고 집안 분위기는 아주 삭막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집안의 화평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2011 1 1일 하나님은 큐티말씀을 통해, 기도하지 않고 있던 저를 책망하시면 흔들어 깨우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장의 말씀이였습니다.   멸망의 날이 갑자기 이르면 누구도 피할 수 없으므로 빛의 자녀인 성도는 늘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였는데 그중에서  자지 말고 오직 깨어서 근신하라”는 말씀이 저에게 강하게 왔습니다.   당장 눈앞에 기도해야 할 큰 일이 있는데도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고 있는 것이 자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시며 깨어서 근신하라고. 깨어서 기도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깨어서 기도하지 못한 저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그 다음 날 부터 교회성전으로 나가서 새벽에 기도하기로 결단했습니다.  달콤한 새벽잠을 포기하고 새벽마다 왕복30마일 되는 교회로 달려가  저희 집안의 화목을 위해 간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새벽기도를 하는 중에, 놀랍게도 그 얽혀진 관계들이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식들을 괴씸하게 여기던 아버님의 마음이 풀어지시고 아버지를 향해 섭섭해하던 자식들의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한결같이 지극정성으로  아버님을 모시는 새 어머님을 지켜보던  자식들은 그분께 가졌던 오해를 풀게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좋은 관계를 갖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큐티할 때 주신 말씀대로  위기의식을 가지고 깨어서 근신하며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신년 부터 저에게 그렇게 깨어서 근신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또 다른 큰 환란을 준비시켜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1 3월에  남편회사가  채널 CBS의 “Undercover Boss”“프로그램에 출연요청을 받아 매스컴을 타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자연히 한인사회에서 꽤 알려지게되었고,  여러 교회와 기독교 방송국에서 신앙간증을 해 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1.5세 젊은 한국인이  미국 주류사회에서 성공했다며  자랑스러워해 주신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나,  크리스쳔 비지니스 CEO로 미국 내셔널 TV에 방영되어져서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셨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가문에 영광이 될 정도로 기쁜일이였지만, 왠지 제 마음은 점점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남편이 자만해질 수 있는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 깨어서 근신하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정말 폭풍우가 몰아치둣, 좋지않은  일들이 갑자기 연이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7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JAMA Conference 에 아이들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마침 남편이 스피커로 초청을 받아서 더 큰 기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첫날,  남편이 CEO로 있던 회사 Sweet Factory  의 변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사회에서 남편의 경영권을 박탈하였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남편은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경악을 감추지 못하였지만,  “이럴 때 내가 놀라고 당황하면 안되지. . 이런 어두움의 날을 위해 하나님이 나를 깨어서 근신하라고 하신거지… “하며 무릎을 꿇고  분노하는 남편의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마음의 평강을 주십사고 기도했습니다.  도움의 손길로 남편의 마음을 잡아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절벽 낭떠러지같은 순간에도, 그곳에 오신 영적 대가들의 말씀을 통하여  남편의 마음을 잔잔히 다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분노로 펄펄 뛰던 남편이 평강을 되찾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자마집회에 참석한 수 많은 2세와 1.5세 학생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큰 은혜를 끼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일이 있던 두달후 8월말에는,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더욱 어두워진 남편은

혼자있는 시간을  원했고  저는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  

허탈하고 슬픔에 잠겨있는 남편이  회복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기도 전에 또 다른 회사의 문제로  남편은 헤어나올수 없는 고통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바하 프레시회사의  CEO직분정지였습니다.  ,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노심초사하였던 문제들이 전세게에 불어닥친 경제불황과 함께  한꺼번에 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아메리칸드림만을 꿈꾸며  쉬지않고 앞만 보고 달려오기만 한 남편.  그렇게 여지껏 공들여 쌓아올린 탑이 손도 한 번 못데보고 모두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것입니다.

 

 

 원치않던 메스컴으로 많은 사람앞에  하늘 꼭대기까지 올리시더니 잔혹하리 만큼  바닥으로 내리쳐진 우리의 현실 앞에  하나님이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사람 꼴, .. 순식간에 우스워졌습니다.     어떻하든지 문제를 막아보고쟈 전화를 붙들고 씨름하는  남편의 절박한 모습과,   광야의 짐승처럼 울부짖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 제 가슴도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무지 초라하고 수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하는 모습이 상상이되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소리가 들리는것같아  심히 괴로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괴롭게 신음하고  있는 나에게  주님은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또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며 요동치 않게 말씀으로 단단히 잡아주셨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라는 시편 119 75절을 통하여  주를 향한 신뢰감을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우리가정에 일어나는 이 어려운 고난의 시간이야 말로 주깨서 의로우시고과  성실하다는 증거임을 확신하며  이루말할 수 없는 위로와 평강을 누렸습니다.  사생아와 같이  내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향한  주님의 거친 사랑때문에  오히려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편에게도,  이 고난을 하나님의 성실하심때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주십사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습니다.  “자기 혹시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불평하는거 아니지?”…..   그런 저의 질문에 남편은  식사하던 밥 숫가락을 내려 놓으면서  “아니, 왜 내가 하나님을 원망하니…..나는 이래야지 정신차릴꺼야,  이렇게 까지 안하면 안돼셨겠지…..”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저는 눈물이 왈칵 나왔습니다.  자신을 괴롭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실하심 때문임을 고백하는 남편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아니 남편에게 그런 믿음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날 시편119 71절에서 시인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고백했는데 그 고백이 우리 부부의 고백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큐티를 통한 말씀의 능력은 참으로 신기하고 기이하다는 걸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큐티를 빠뜨린 적도 있고 적당히 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팔년 정도 지속적으로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큐티 내공이 쌓여서 제 내면이 예전보다 많이 강건해졌습니다. 

겁많고 약했던 마음이 담대해지고, 남편을 향해 원망과 불평만 쌓던 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편을 위로하는 아내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변화되는 저를 보고 놀라와 하며 마음에 평정을 찾고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이자리에 서서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였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다 드러내는 일이 참. . .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고난속에서도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바로 형통한 삶이라는것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런 용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젠 아메리칸드림을 이루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저희가정이 되기를 소원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