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모임의 김문송 입니다.

 

저는 10여년 , 큐티모임에 나오면서 부터 큐티를 시작해서, 거의 날마다 꾸준하게 해온 편입니다.  그동안 큐티를 통해 드라마틱하게 변화를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격과  삶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웬만한 일에는 요동하지 않게 되었고,  뾰족한 성격과 말투도 부드러워졌습니다.  보는 자세 반응하는 태도도  바뀌어서,  전에는 원망과 불평을 많이 했는데,  이젠 모든 일에서 주님의 선한 뜻을 발견하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나이 50 넘도록 자녀가  없지만, 그것 까지도 주님의 특별한 섭리로 받아들이고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좋아진 것은, 결혼초부터 함께 살아오면서 갈등이 심했던 시어머니와의 관계 입니다.  큐티를 하며,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며느리가 되려고 애쓰다보니, 해결되지 않을 같은 고부간의 갈등도 해결되고, 저는 병들어 누워계신  시어머니를  섬기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싫어하시던 저의 어머니는  교회다니는 저를 처음부터 마땅하게 여기 셨습니다.  저에게 한번도 살갑게 대해주지 않고 상처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저대로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를 꽁꽁 묻어둔채 오랫동안 마음을 굳게 닫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노인이신 어머니의 힘이 약해지고  며느리인 저의  힘이 커지자,   안에 있던 상처가 튀어나왔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하셨던 처럼, 저는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일부러 골라서 했습니다.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속이 시원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쁜 며느리라는 죄책감으로 괴로 웠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 못하는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던 어떤 묵상하게 말씀은 요한일서 29절에서 11절이었습니다. 

 

빛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하는 9절말씀이 그대로 저에게 와서 꽂혔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시어머니를 미워하고 있는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으니까 당연히 빛가운에 있다고 생각 했는데, 함께 살고 계신 내 어머니를 미워했으니, 사실은 내가 지금까지 어둠 가운데 갇혀 있던 것이었습니다. 

 

11절은 제가 얼마나 어둠에 가려있는지를 좀 더 상세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 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예수님을 안 믿는 어머니만 어두움 속에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믿는다고 하는 내가 더 짙은 어둠 속에 갇혀있었다는 것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면 사랑이 나타나야 하는데, 도리어 미움이 가득했으니 내가 어둠에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빛의 자녀 인 내가  바보같이 어둠의 종노릇을 했다고 생각하니 너무 분했습니다.

  

주님앞에 회개하고 더 이상 어둠에 가려서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겠다고 큰 소리로 선포 했습니다. “어두움은 물러가라. 미움은 떠나라”.  그리고 빛이신 주님이 저를 가득채워 주시기를, 내게서 그 사랑이 어머니에게로 흘러가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 후, 어머니에 대한 섭섭함이 사라지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어머니가 도리어 불쌍하 게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밉지 않고 측은하게 여겨지니까, 어머니의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도 더 간절히 하게되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어머니는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세례도 받으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10 부터 파킨슨 병과 약간의 치매끼가 있었던 시어머니는 2009 가을 부터 증세 심해지셨습니다.  자주 넘어지고 걷지를 못하셨습니다. 약의 부작용으로 환각상태가   밤새  잠을 주무시고 헛소리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삼십분  간격으로 화장실에 자주 가는 증세가 생기고 소변을  보시는데 문제 생겼습니다.  변비가 심해서 걷지도 못하고 기어서  화장실에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셨 습니다.  방에서 쓰는 변기를 마련해드렸지만  그것을 마다 하시고 굳이  화장실에 가시기 때문에  저는 어머니를 쫒아 가서  변기에  올려 드리고  내려 드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밤새 도와드리다 보니 남편과  하루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었습니다.

 

변비가 너무 심하면 약을 드시는데, 그럴 때는 기어 가시는 사이에 바지에 실례를 하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실을 모르고  볼일보신 어머니 바지를 입혀 드리다가  바지에 오물이 손에  묻기도 하고 결국 샤워까지 시켜드려야 하는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 날들이 지속되면서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고통으로 절절 매시는 어머님을 보면 불쌍한 마음이 들어 해드리려고 다짐하지만  내가 힘이 들고 지치면 짜증이 났습니다.  어머님에게  방의 변기에서  볼일을 보시지  화장실까지 가시면서 우리까지 힘들게 하시냐고  소리를 지르기도했습니다. 

 

하는 없이 화장실에 가지 마시고  누운 상태에서 볼일을 보시도록 기저귀를 채워 드렸 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그것을 불편해하시며  다시  화장실로  기어 가시곤 하셨습니다.  다른 부작용으로  괄약근에 이상이 생겨  이번엔  변비증세보다 어려워지셨습니다. 본인도 못느끼는 가운데 시도 때도 없이 변을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변을 치워드리는 도중에도  변이 나와서 놀랜 적이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 때문에  고생하는 자식에게 미안해서  소변을 참고 참으시다가  신장에 염증 생기셔서 독한  항생제를 드시기도 하셨습니다.    변의 양을 줄이시려고  목이 말라도  물을 안마시고 참으며 식사도  많이 안드셨습니다.  그런 어머님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파  어머니를 안고 같이 울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자신이 너무 힘들때는  저의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나곤 했습니다.  어머니 에게 신경질을 내기고 하고  어떤 때는  이러고  오래 사시면  어쩌나 하고 속으로 몰래 걱정   하기도 했습니다. 변을 자주보시는 어머니에게 밥을 많이 드리는 남편을 보면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럴 마다  그렇게 이기적이고 사랑없는 모습에 낙심이 되어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다음 큐티말씀을 펴고 앉으면  주님은 말씀으로  저의 부족함을 지적해주시며,  병든 어머니를 주님의 사랑으로 섬길 있도록 힘을 주셨습니다.  특히 작년초 가장 힘든 시기에는 요한 복음을 통해 많이 붙잡아 주셨습니다.

 

작년 224일입니다.  요한복음12:37-50 큐티했습니다.   37절과 38절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외면하는 유대인들을 만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외면하 지만 저는 어머니 다리 주무르는 것이 싫어서 어머니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 니다. 어머니가 다리를 많이 아파하셔서  주물러 드리곤 했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하루에도 번씩 만져 드리다 보면 팔이 떨어져 나가는 처럼 아팠습니다.  그럴 때는 어머니가 다리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지나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 외면당하시는 주님의 외로운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어머니도 내가 그럴 때마다 무척 외로우셨을 꺼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어머니에게 너무 죄송했습 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힘들다고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예수 님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님께도 죄송했습니다. 다음부터는  팔이 쥐가 나도록 아파도 어머니 다리를 주물러 드렸습니다.

 

며칠 요한 17:1-8절을 묵상했습니다.   45 말씀이 다가왔습니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중에서도  예수님이 자신에게  하라고 주신일을 이루셨다는 것과 그럼으로써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부분이 마음에 강하게 왔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에게 주신 일을 이루신 에수님을 묵상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일이  이땅에서 높힘 받는 일이 아니라, 갖은 고초를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일이 었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일을 이루셨을까를 묵상해보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일이었기에 예수님은 일을  고난으로만 보지 않고 영광스러운 일로 여기셨다는 깨달음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습니다. 아하!  그러셨구나, 주님은  영광스런 일을 이루면 아버지를 영화롭게하고 자신을 영화롭게 것을 분명히 아셨구나! “

 

,   문제가 무엇인지 보였습니다.  저에게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일은 당연히 병든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일을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영광스런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변을 보시는 어머니 수종드는 일은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일로만 고생스런 일로만 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시는 일은 일이 어떤 일이든 영광스런 일인데,  그일을 이루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겉으 로는 어쩔 없이 어머니병간호를 하지만, 속으로는 어떻게하든지 피하고 싶었던 것입 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만 힘든 일을 주셨다고 은근히 섭섭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제게 병든시어머니를 모시라고 하신 것은 저를 고생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 저를 영화롭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고난 뒤에 있는 축복을 바라보니, 훨씬 힘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약해 때도 많았습니다.  특히  주일에 교회가기 전에,  대책없이 자주 보시는 대변 때문에  번씩 시중을 들다 보면,  예배시간에 맞춰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날은 열번도 넘게 볼일을 보셔서 그것 치우다가 교회에 가지못한 적도 있어서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는, 주님이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이 아무리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해도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저의 마음을 아시고,  며칠 요한복음 1938 말씀을  통해 거듭 저의 마음을 붙잡아주셨습니다. 그날 말씀은 예수님 제자이면서도  유대사람이 무서워 자신을 숨겼던 아리마대 요셉이  주께서 돌아가신   담대히 나서서 시신을 모시는 내용이었습 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상황에서 빌라도를 찾아가 주님의 시체를 요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그럴 있었을까? 용기는 어디서 왔을까? 아리마대 요셉의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살아계실 드러내 놓고 제자 노릇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을 같았습니다.  아쉬움이 너무 커서 돌아가신 시신이라도  모시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을 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앞으로는 예수님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도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시신이라도 섬기려고 용기를 내고 그런 결단을 했을 같았습 니다.  예수님을 위해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 했을 같았습니다.

 

나에게도 지금이  어머니를 섬길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 습니다.   그래  어머니에게 해드리고 싶어도   없을 때가  것이다.  지금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자. 마지막인데  못하겠는가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해드리자. 돌아가시고 나면, 섬기고 싶어  섬길 없다. 돌아가신 다음 후회나 아쉬움이 없도록 해드리자. “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내가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도 어머니에게 해드리려고 애를 쓰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점점 증세가 심해지는 어머니를 양로병원에 보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권해도, 말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집에서 돌보고 있습니다.

 

이렇듯 2년여동안  큐티말씀으로  힘을 얻으며 감당하다보니  지금은 어머님의 증세가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그토록 대책없이 자주보시던 변을 하루에 한번만 보시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시누이가 일주일에 오일 씩이나 낮시간에 와서 어머님을 돌보아 주고. 남편도 제가 하던 일을 많이 덜어주고 있어서 한결 쉬워졌습니다. 덕분에 저는 그동안 불경기와 함께 잠깐 접었던 비즈니스도 다시  있게 되었구요.

 

저는 아직도  미숙하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주님이 계속해서  말씀으로  저를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성숙한 사람으로 빚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주님을 바라보며 앞으로도 날마다 큐티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날마다 말씀으로 저를 붙잡아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