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 때에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이사야 10:3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오늘본문을 읽어 내려갈 때, <환난>이라는 불청객-단어가 왜 이리도 낯익은 등장인물처럼 친숙해 보이는지...
지난 3월 말, 데살로니가전서 큐티 때 만났던 바울의 편지가 떠올랐다. 환난 가운데서 바울과 주를 본 받을 뿐 아니라 마게도냐와 아가야와 각처에 좋은 소문을 내었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했던 바울의 편지 말이다(1:6-8). 그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하고 격려하던 바울처럼, 그 날 큐티적용으로, 그러한 격려가 필요한 지체가 누구일까? 를 찾고 있었다.
다음날,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직장을 잃게 되었다고 했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나를 진정시키려고 전화 먼저 한 것이다. 또 <환난>의 시작인가? 어떻게 먹고 살지? 어이쿠! 그 웬수같은 남편의 얼굴을 떠올려 보는데, 왜 며칠 전 큐티말씀도 같이 떠오르는 것일까? 내 격려의 대상은 멀리 있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다.
머리로는 알겠지만 마음에 내키지 않는 가운데, 어-억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남편에게 “당신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고 택한 자녀니까, 잘 될꺼야!”라고 말 해 주었다.
데살로니가 말씀이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히, 침묵의 폭언을 퍼부으며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을 것이다. 실직의 첫 단추, 환난의 첫 발을 안전하게 내어딛도록 해 주신 하나님 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만났던 나의 하나님이었다.

사실, 남편은 지난 4년 동안 네 번이나 실직을 하였다. 그 사이 나는 세 아이를 낳았고, 우리가정은 3남 1녀를 둔 대가족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직한 남편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정말 절망과 낙심 그 자체였다.  속으로 남편의 단점들과 부족한 점들을 도마에 올려 놓고 날마다 칼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사야서가 시작되었다. 이사야는 유다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이사야 1:4)  이 말씀을 읽으며, 나는 이런 묵상을 하고 있었다. “슬프다! 허물진 남편이요, 내게 암적인 존재요, 행위가 짜증나는 사람이로다...” 그러면서, 슬슬 속에 품었던 칼을 뺄 때가 온 것 같았다. 오늘은 선지자이사야처럼 말하리라! 내 마음에 안 드는 남편의 문제들을 지적하리라!
다시 본문을 읽어 내려갈 때, 1장 2절의 <자식같이 유다를 양육하셨다>는 하나님의 하소연이 요동치는 내 마음을 붙잡았다.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자식>같이 말씀으로 양육하셨는데, 나는 과연 <내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이사야서를 주욱 읽어 내려갔다.
이사야서 5:1-4,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자칫 <내 남편이, 들포도>라고 손가락질 할 뻔 한 나에게,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내 심령에 송알송알 맺혀있는 들포도를 보게 하신 것이다.
나도 남편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기름진 기도를 해 왔다고, 남편을 큐티하는 남편으로 만들기까지 했다고, 열매 맺기 좋도록 땅도 파주고 돌도 제해 주는 아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내 판단을 주장할 때! 하나님은, 나와 아버지의 다른 점을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은 들포도같은 나를 지금까지 극상품포도로 봐 주셨는데, 나는 남편을 한 번도 극상품포도로 여긴 적이 없었다고, 내 속마음을 내가 볼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열어 주셨다.
그 날,  하나님은 내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셨다. 그리고, 결심했다. 지금까지는 남편을 억지로 격려했지만, 이제부터는 진심으로 극상품포도로 대우 해 보겠다고 말이다.
그 날이후, 내 눈에는 남편이 백수로 안 보였다. 내 영혼의 들포도 딱지를 뗄 기회를 준 남편이 오히려 복덩이처럼 보였다.
회개하고 돌이킨 내게, 하나님은 잠언 31:10-12절 말씀을 보너스로 주셨다.
현숙한 여인의 남편은 산업이 핍절치 않는다는 말씀이 레마로 들렸다.
남편에게, “당신이 무능력해서 실직한 게 아니라, 아내인 내가 현숙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니, 내가 잘 못했다.”고 고백하고 나니, 내 마음보다 더 아플 남편의 마음이 보였다.

오늘, 지난 한달, <환난>날의 우리가정의 여정을 돌아다 본다. 예전에 실직을 했을 땐, 괜한 자격지심 때문에 더욱 곤조를 부리던 남편이었다. 그랬던 남편이, 오히려 나를 극상품포도로 대접해 주고 있는 현재를 살고 있다. 내가 큐티모임을 다녀오는 날이면, 밀린 빨래를 다 해놓고 밥까지 차려놓고 나를 여왕대접 해 준다. 나와 경쟁이라도 하듯, 이제는 큐티한 말씀을 제대로 적용하며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고 또 애쓰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이 <환난>, 참 겪을만하다.
처음, 하나님이 실직한 남편을 왕포도대접 해 주라고 하셨을 때, 내겐 정말 어처구니없는 강요로 들렸다.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내가 여왕처럼 살 수 있는 원리를 깨우쳐 주시려고, 그렇게도 내가 하기 싫은 것들을 해 보라고 말씀으로 설득해 오신 것이다.

완전한 기묘자 이시며 모사되신 하나님이, 오늘 내게 <세가지 질문>을 던지고 계신다.
첫째,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나는 이렇게 답해 드린다.
말씀대로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환난 중에 행복을 맛 봅니다. 앞으로도 주신 말씀대로 해 보려고 노력할 꺼예요.
둘째,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느냐?
지금까진 남편에게 기도부탁을 하지 않았어요. 제 기도가 더 능력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요즘, 하루에 두 시간씩 성전에서 기도하는 남편에게 기도부탁을 한답니다. 남편의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어요. 남편이 극상품종이니까 나를 위한 극상품기도를 해 줄 것이 믿어지기 때문이예요.
셋째, 너희 영화(riches)를 어디에 두려느냐?  
하나님, 제 수중에 얼마 남지 않은 물질을 하나님 나라에 심겠어요. 꼭 필요한 곳에 쓰려던 돈으로 인터넷을 신청했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나의 영화되신 하나님을 <큐티라이프 웹사이트> 안에 모셔 두겠습니다. 글나눔게시판에, 환난 중에 만난 <나의 하나님>을 전하러 갈 꺼예요. 오늘 컴맹인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게시판에 글을 <둡니다>.
이것이 , 오늘 저의 적용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