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요즘 집안에 신경쓸 일들이 자꾸 터진다.
현희의 미술 학원 선생의 실수, 남편의 차사고, 잔디깍는 기계 도난 사고 등등…

누가복음을 묵상하며 나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지만 생활이 어려운 누군가를
조금씩 돕고 있는데…  큰 맘 먹고 선교 헌금도 했는데…  
남편이 어떻게 해서든 차를 안사고 버텨 보려고 몇달전에 수리비도 꽤 썼는데
타고 다니던 낡은차가 사고가 났으니 이제는 할수 없이 차를 한 대 사야할 처지이다.  

현희의 대학 진학 문제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것 같아서 마음도 편치가 않다.  
다닌지 1년이나 된 미술 학원에서 11학년인 딸 아이를 8,9학년으로 착각했다는
학원 선생의 말에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제 밀린 그림들을 그리려면 현재보다 학원비가 두배나 된다.

어제 주일 오후에는 목장 준비로 한창 바빠 정신이 없는데 밖에서 남편이 잔디를 깍다가
잠시 뒤꼍으로 간 사이에 어떤 사람이 기계를 싣고 가버렸다.  
도둑을 잡기 위해 남편이 내 차를 타고 나가자 마자 차고에 있던 현희가 갑자기
동네가 떠나가라 하고 “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히스테리를 부렸다.  
안경집도 던져 버리고는 씩씩거리며 흥분을 하는 딸의 뺨을 냅다 후려 쳤다.  
아이들의 퉁명스런 말투도 허용을 못하는 나도 참지를 못한 것이다.
친구 집에 공부하러 가야하는데 자기 숙제가 있는 van  차를 아빠가 끌고 나가자
기다려 보지도 않고 안달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폭발한것이다.  
그렇잖아도 요즘 꼬이는 일들로 인해 어수선한데 너까지 왜 그러냐고 하자
“엄마도 스트레스 받으면 소리지르지 않냐”면서  따졌다.  
그 다음에 오고간 대화는 안봐도 뻔한 스토리들이다.

남편은 나간지 30분이 지나자 돌아 왔다.  경찰서에 들러 신고까지 하고 온 것이다.  
나는 딸 아이를 친구 집에 데려다 주고는 집에 오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왜 이런 일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일까?  
하나님, 이런 상황에서 잔디깍이 기계를 어떻게 찾아 주실건데요.  찾아 주실수 있나요?  
학원은 옮겨야 되나요 그냥 있어야 되나요? 하는 막연한 질문들을 중얼 거렸다.  
기계도 비싼건데…
그렇게 착하고 순한 아이가 작은 일에 목소리를 높이고 울면서 뻘건 눈으로 나를 무섭게
쏘아볼때면 나도 이성을 잃고 또 분을 내고 만다.  
묵상을 하며 딸 아이에게 잘해 주리라 다짐한 것이 몇번이던가?  
결국은 수백번의 다짐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것을 몇번이나 경험했던가?
이렇게 망가지면서 무슨 큐티 인도자란 말인가?  
아이들의 눈에는 영락없는 위선자였다.  후회하고 가슴을 쳐봐도 이미 엎질러 진 물.
7년전에 현희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때 밖에 나가서 친구와 빨리 놀고 싶은 마음에
내가 하라고 준 공부를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한것을 알아 채고는 아이의 종아리를 몇대
때린것이 마지막 손댄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현희가 그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히 여겼던가?  
잘못한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부모들을 많이 봤는데 자신이 잘못했을때 방치하지 않고
바로 잡아줬다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런데 과연 현희가 어제 뺨 맞은 일도 감사하게 생각할까?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어쨌든 남편이 이 일로 인해 경찰서를 세번이나 갔다 왔다.
옆집 사람이 우리 남편이 잔디를 깍는것을 보았고 어떤 사람이 와서 기계를 싣고 가는것도
보았다고 한다.  금방 집어 가길래 아무 생각도 없었단다.  마헬살랄하스바스라더니…
도둑도 어제의 말씀을 적용하기라도 한듯이 신속히 노략질을 해갔다.  그리고는 신속히 잡혔다.
옆집 사람이 말해주는 트럭의 생김새를 전해 듣고는 경찰이 하는 말, “ I know him”.  
차가 무슨 차라는 말을 듣더니만 차 주인이 누군지 안다고 했다.  단골 손님이었던 것이다.
경찰들이 그 집을 금방 찾아가니 그 도둑이 트럭에서 기계를 막 내리고 있었다.
정말 운이 없는 도둑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가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목장 시간이 되자 우리 집으로 들어 오는 목원들이 경찰차에 연행(?) 돼 가는 남편을 목격하는
헤프닝이 벌어졌다.  나중에 사연을 듣고는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오늘 말씀을 보니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야곱의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셨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셨나하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낯을 가리우신 분으로 표현하는 이사야의 마음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야속하시다는 생각도 들었을까?

어찌 되었건 이사야는 그 여호와를 기다리며 그를 바라 보리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에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다고 한다.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힘든 학업으로 인해 날카로와진 아이를 감싸 주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하나님께도 죄송했다.  말씀의 지배를 받지 못하고 나의 감정이 나를 삼키게 하기를
얼마나 했고 큐티를 통해 적용거리로 얼마나 share 했던가?   제가 또 잘못했습니다.  
인내하지 못한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또 넘어졌지만 또 일어서겠습니다.  

오늘 현희를 학교에서 데리고 오는중에 자신의 성적으로 인해 걱정을 하는것을 보았다.
주유소에 들러 개스를 넣으면서 얼핏보니 자신의 GPA를 계산해 보는듯 했다.  
수심이 가득찬 얼굴이었다.
학교가 미국 전국에서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성적을 너무 짜게 주는 선생들로 인해 정말
성실하게 공부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너무 마음 고생을 하는것은 사실이었다.  
나의 마음이 쨔안했다.
어제의 일에 대하여 둘이서 서로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그 아이도 반성하고 있는듯 했다.
나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너무 미안해서 과일을 갈아 쥬스도 만들어 주고 관심을
보이기 위해 괜히 이것 저것 말을 붙였다.  본인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좋은 대학에 못들어 간다면 어쩌겠냐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는 지난주 화요일 말씀을 잠깐 나눴다.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인생은
아무 소득이 없음을 말해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모든 해결책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교제를 갖자고 초청하시는것 이라고 했다.  이것은 아이가 힘들어 할때마다 해준 말이었다.  
그동안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시간의 여유가 너무 없어서 함께 앉아 큐티를 나누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죄송하고 찜찜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었다.  
매달 영어판 생명의 삶을 사다주며 큐티를 매일 하라고 말하는것 외에는
특별히 해준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사야는 자신의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스알야숩과 마할살랄하스바스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사야가 두 아들을 신앙으로 잘 키웠으리라고 생각된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고 학교 숙제를 하느라 밤새 한숨도 못자기를 밥먹듯 하는 아이가 안스러워
언제부터 소홀히 한 가정 예배와 가족간의 큐티 나눔.  무너진 가정 같이…
3년전에 인도자를 시작하면서 창세기를 묵상했을때 방주에서 나온 노아를 통해 가정 예배를
드리기로 적용하지 않았던가?  방주에서 나왔을때 세상은 정말 혼돈 그 자체였을텐데 끝없는
복구 작업을 눈 앞에 두고도 노아는 하나님께 단을 쌓았고 그 어느것도 예배 드리는것보다
더 우선시 하지 않았다.
노아는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을 위한 정성스런 예배를 드렸으리라.  
그것을 묵상하며 아이들이 아무리 숙제에 쫓겨 바빠도 가정에서 단을 쌓기로 결단하고
실천하지 않았던가?
무너진 단을 다시 수축하자.  늘 마음뿐이었던것을 이제 실천으로 옮기자.    
그리하여 훗날 사람들에게 우리 부부에게 주신 자녀들로 인하여 하나님을 드러내는 징조와
예표가 되게 하자.
이 모든것이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가슴을 펴고 외칠
그날을 주심을 바라며.

<오늘의 실천>
아이들과 큐티 나누기. 혹은 합심 기도라도 하기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 축복기도 꼭 해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