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웃시야 왕이 죽던해
웃시야왕의 향단사건의 배후에는 부패한 생활이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분향을 해야지 한것이 아니라, 조금씩 하나님과 멀어지고 마침내 하나님을 대적하고 더 높아지려한것이다.
권력과 부가 없어서 덜할 뿐이지 나도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나의 생활은 어떠한가? 나의 매일이 하나님이 왕이시라고 말하고 있을까?
아니면 조금씩 교만으로 향하고 있을까?
* 높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
이사야의 왕이 죽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만물을 통치하신다.
나에게 의지가 되는 왕들을 내려놓아도,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권위로 나를 다스리신다.
요즘나의 왕은 먹는것이다.음식은 좋은것이지만,문제는 마음을 다해 의지한다는 것이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우울함을 달래보고자 하고, 진한 커피한잔으로 힘을 내어보려하고,
모양좋은 초콜렛이나 케잌, 쿠키를 떠올림으로 기분전환을하려하는 데에있다.
아프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 접고 한끼 금식이나 간식금식을 통해서라도 음식에 온통 가있는 내마음부터 찾아와야겠다.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존재감이, 아니 존재하심이 성전구석구석에 까지도 생생하다는 것?
어린시절, 엄마가 아무말도 하시지 않아도 집안에 계시지않은 것과는
너무도 달라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가 출근을 하시면 한동안 울고 있곤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나 함께하시고, 특히 우리의 몸인 성전안에 성령하나님께서 함께 사신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해도 머리속에 스쳐가는 작은 생각이나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까지
나눌수는 없다.그러나 성령하나님은 나보다도 나를 구석구석 더 잘아신다.그럼에도 얼마나 자주 걱정거리를 껴안고 있는지 모르겠다.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옷자락, 내 하루 일분 일초에 가득한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다.
2절 스랍들이 얼굴과 발을 가리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얼굴은 자아를 대표하고 발은 업적을 의미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와 대화를 할때, 마음속에 작은 불이 들어올때가 있다. 작은 불을 무시하면 더 큰 불이 들어온다.자신을 은근히 자랑할 때나, 상대의 이야기에 대답을 하는 것 같으면서 나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갈때 그렇다. 누구와 무슨대화를 하든지, 그 곳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는 것과 내가 한 일들을 은혜라고 고백하는 대신 자랑하려는 것들...가리우기 원합니다. 상대방의 삶과 나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높이는 대화가 되기원합니다.
3절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이 온 천국에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이 땅가운데에 가득합니다.
이 땅은 죄악 투성이인데 하나님의 영광이 어디에 가득하다는 뜻일까요?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의인이었던 노아처럼,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신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그렇다면 온갖 상황,사람,사건에 치일것이 아니라 스랍들처럼 부지런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저의 본분이고, 매일매일의 우선순위 0순위이다.
*이들의 찬양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스랍들의 찬양에 4절에서 성전이 요동하고 연기가 생겼다.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만나실때도 산이 요동하고 연기로 가득차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닥에 얼굴을 대고 없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에 뜨겁게 반응해주신다. 오히려 올려드린 찬양에 비해 더욱 큰 반응을 주신다.우리 찬양의 관객은 오직 한분!
5-7절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사야의 아버지가 귀족이었다니, 그들의 사회를 더 잘알았을런지 모르겠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더불어 부패세력을 위해 중보하는 이사야...
나의 옹졸한 기준으로 사람들을 이리저리 재고 정죄한 것을 회개합니다.
눈에는 들보가 들어있는데, 티를 보고서 난리를 치고있었네요.
주님의 영광을 보고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해주에요.
*제단에서 집은 핀 숯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제단숯을 제 입에도 대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그 숯은 말씀이 아닐까..."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내 입술에 말씀이 찰싹 붙어 있으면 망할 입술이 아니라 나도 흥하고 남도 흥하는 입술이 된다. 음...한동안 게을렀던 암송을 다시 제대로 하겠습니다.
8절-10절 어디에 보내신다는 것일까요?
무엇을 위해 보내신다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왜 가겠다고 했을까요?
이사야에게 가라고 하신것도 아닌데 자원했다. 어제 큐티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진노하셔야만 했던 그 마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그런데 이사야선지자는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게 되어 자진해서 하나님의일을 하고자한다.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다이런 메세지를 전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험난함 삶을 살게 될것이다.그러나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된 이사야에겐 그것이 기쁨이었을것이다. 사람에게 좋게하는것이 아닌 하나님께 좋게하는 인생살기 원합니다.무엇보다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같은 마음 품기 원합니다.
11-13절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룩한 씨가 그루터기 만큼만 남을 때까지는 언제일까요?거룩한 씨란 무엇일까요?
노아의 시대엔 딱 8명만 남기셨다. 기회를 계속주셨음에도 사람들은 멸망을 선택했다.
나는 과연 그루터기중 하나가 되어 남기심을 입을 수 있을까?
어떤 난리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깨어 기도하는 것, 다섯처녀처럼 미리미리 기름을 준비하는 자세...나 자신을 믿을 수 없습니다.
주님, 피곤하면 기도안해도 된다 하시지 않으시고 한시간이라도 깨어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요즘엔 육체의 피곤함과 사람들이 쏟아놓는 하소연에 지쳐 졸고 있었습니다.누구를 만나 무슨얘기를듣던지 감사함으로 깨어서 중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