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전 6:11~21
내가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내가 좇아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면서 어떤 사람으로 불려지는지 그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셨고 또 앞으로는 “~ 라고 불려질 것이다” 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하나님의 사람아” 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명하신다고 했다.
그런데 왜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를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명하신다고 하는걸까?

우리는 창조자 앞에서는 숙연해지고 거짓을 말할수는 없겠지? 왜냐하면 모든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만약 생명까지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어떤 증거를 해야 한다면 어땠을까? 그 순간만 피하면 생명은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살고 보고 그 다음에 해명해도 늦지는 않을거라는 식의 타협을 할 것 같다.

그 자체로서 온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불의한 상황앞에서 선한증거를 하신 예수님 앞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억울하다는 말은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명령을 내리면서 쓸데없는데 신경쓰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신다.  그것이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거라고 하신다.

요즘 내게는 한국에서 왔던 관리형 유학생 중 한 명의 학생 부모님 때문에 억울하고 힘든 일이 있다. 어떻게 처리를 해야할지 여러사람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입장이 난처하다.  어떤 판단이 맞는 것인지? 그냥 없었던 일로 치고 한국에서 원하는 대로 내버려둘까?

하지만 하나님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하신다. 모든 것을 후히 주사 그것도 너무 많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신다.
불의한 것을 흘러가는 대로 둘것이 아니라 소신대로 몇 안되는 학생이지만 이 학생들을 끝까지 잘 관리해서 이 프로그램을 마쳐야겠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려지고 인정 받으려면 이 세상에서 말하는 잘못된 지식으로 살 것이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뜻이 아닌 말로 변론하는 것을 피하라고 하신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도 여러가지일것이다. 하지만 참된 생명을 취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전에 목사님이 비지니스 심방을 오셨을때도 그렇고 기초를 쌓되 모래위에가 아닌 반석위에 쌓으라는 말씀을 여러번 주셨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것은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내가 내 마음대로 내가 편한대로 사는 것은 이 세상에 너무 젖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곁에 두고 자꾸 나를 돌아봐야 한다. 공부도 복습이 중요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되돌아보는 그것이 바로 장래에 좋은 터를 쌓는 것이며 참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장소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