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두 대가 생겼는데, 왜 아빠와 싸웠냐고 묻는 아들과
어제, 큐티를 나누던 중 푸념만 하고 말았다.
“엄마는 이런 상황을 글나눔에 올리는 것이 창피하다.
사실, 엄마가 택한 차가 옳은 선택이었는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아빠의 결정을 무시하고 만 결과에 대해서도 마음이 아프고 말이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 지 엄마도 잘 모르겠다...
글을 올리지 않았다면, 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었던 일인데....
우리집에 차가 있었는지 없어졌는지 없어졌다생겼는지 누가 알게 뭐야?"
아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Do not fear,mom! God is testing you!"

So do not be ashamed to testify about our Lord...<딤후 1:8>

하나님은 나를 잘 알고 계셨다.
나는 테스트 자체가 두렵기도 하지만,
테스트를 지혜롭게 풀어 나가지도 못하는데다가 한심한 큐티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내 지혜를 자책하는 감옥에 또 나를 가두어 놓고...

하나님은, 나에 대해 또 뭘 알고 계실까?

어제, 아들과의 나눔가운데, 테스트를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분석?하고 있는데,
OO자매와 그 남편이, 내게 차를 주러 왔다.
자매는 주기에도 미안하다고 고개를 못 들고,
자매의 남편은 아-주 정직하게 손 봐야 할 부분들을 조목조목 가르쳐주는데...,
깜박이 등이 나갔는데, 여기 extra 전구 넣어 두었습니다...
냉각수가 새니까 고쳐야 할 껍니다.
며칠 전 Freeway에서 차가 한 번 섰었는데, 냉각수 때문이었다네요.
...너무 정직하셨다.
점점...겁이 났다.
좀 위험하겠는 걸...?!
앞 범퍼가 내려앉기 일보 직전으로 아슬하게 차체에 붙어 있었다.

푸하하하핫!
웃음이 터진다. 도저히 내 실력(믿음의 수준)으로는
귀하게 여기며 소중히 여기며 타겠다는 겸손한 적용을 하기엔, 지나치게 쎈 것이 걸렸다.
명의 이전 등록하기 전에 당장 손봐야 하는 것들에 들어갈 비용에 또 한번 겁을 먹고...

그 순간, 무슨 생각이 났겠는가!
‘휴...남편사장이 차 안 준댔으면 어떡할 뻔 했으까나...?’

OO자매도, 이 차는 아쉬운대로 타고 그 사장이 주는 차를 안전하게 타는게 어떻겠냐고...
죽어도 안 탈 것 마냥 굴었구만...인도하심대로 가야지...하고 대답하는 나.

차 한 대에 엮여서, 상전에게 멍에 지는 종 될까봐(그런 경험에서 아직 헤어나질 못해서)
차라리 속 편하게 부담없는 차 타려고 했던 나의 비겁함.
거짓믿음 때문에 이틀간 엄청 괴로웠는데...
그제야 속이 후련해 졌다.
냉전 중이었던 남편에게 전화을 했다. 차 상태를 얘기했더니,
“사장님이, 가끔 내가 타운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 회사차를 써 주면
사장님 입장에선 마음이 편하대. 그래서 차 주실려 그러는 거지~”
하는데,
나는 대뜸, “그럼 부담 안 가져도 되겠네! 회사 일로 차 타야 할 일이 많으면~!”
하고, 혹시나 사장님이 주는 차를 이미 거절해 버렸을까봐, 얼른 전화한 것이다.

주의 일 할 때도 내 영적수준은 그런 상태라고, 하나님은 알아보고 계셨다.
내가 누리는 복음은 생명을 주고, 내가 누리는 예수는 평강을 주시지만,
그것들을 증거함에 따르는, 즉, 양육과 관계와 손해와 희생으로 오는 부수적인 아픔들은
절대 누리고 싶지 않은, 철저히 피하고만 싶어하는 나를, 안타까워 하신다.

도저히 펴질 기미가 안 보이고 찌그러진 상태로 그 차에 달려 있던,  범퍼같은 내 인생을
부끄러워 하는 것도,
하나님이 내게 의탁한 삶을 부정하는 것이며,
나 또한 내 삶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하신다. (딤후 1:12)
<달려만 >있으니까 부끄럽지...예수님처럼 달려서 <죽으면> 부활의 영광을 맛 볼 것을...
아...바울이 디모데에게 고난을 받으라고 말했던 건,
그런 차원이었겠다는 깨달음이 든다.
하나님은 내게, 그 바울의 예수님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바울은, 로마셋집(1차 구금)에 있을 때, 그를 면회 왔었던
오네시보로의 집을 기억하고 또 칭찬해 주고 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에게서 받은 도움에 대해
<바울의 메임을 부끄러워 아니 했다>라는 관점에서, 그의 동역을 기뻐한다.(16절)
마치 바울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전도자의 시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두 번씩이나, <주의 긍휼함이 임하길>(1:16,18) 중보로 갚고 있다.

왜, 그렇게도 고마운 오네시보로의 집을, 자자손손 축복해 달라고 의탁하지 않고
<긍휼히 여겨 달라>고, 주님께 강청하는 것일까?
아마도, 바울은 오네시보로가 방문해 주었을 때, 사람의 도움이나 동정으로 받지 않고,
주를 영접하는 것과 같은 기쁨과 긍휼히 여김받는 것을
감사함으로 누렸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내게 필요한 차를 주셔서 급한 볼 일들을 유쾌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해 준
OO자매를 위해서, 그리고
주 안에서 자매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끊임없는 관심을 쏟아주는 동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내용을 -오늘 묵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자매들의 삶 가운데, 가장 주님이 필요한 순간이 오거든,
그때 내가 누린 두배의 긍휼함으로 주님이 갚아주시옵소서.

그리고, 이렇게 비겁하고 거짓믿음 투성이인 딸이지만,
날마다 말씀되신 주님을 만나러 나오는 나를 <오네시보로>처럼 기억해 주셔서,
주여, 나를 부디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