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딤후 1:6

디모데의 은사는, 어쩌다가 바울이 염려할 정도로 사그러 들게 되었던 걸까?
7절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 이유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능력과 사랑과 근신의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려움의 영>에 더 쉽게 사로잡혀 가는 존재임을, 깨우치게도 된다.

디모데도, 우상의 도시 에베소에서의 영적전쟁을 싸우며, 성도들 간의 영적갈등을 겪으며,
결정적으로 친아버지같은 스승 바울의 갇힘으로 인해...,
두려움의 영에 기습을 당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본문의 <두려움의 영>이, 영어로는 <a spirit of timidity>
새표준번역에는 <비겁함의 영> 이라고 되어 있다.

아, 바울이, 사랑하는 아들의 비겁함을 좀 꾸중하시려고,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부터, 앞서 거하게 칭찬해 주셨던 거구나.

거짓 없는 믿음이란, 어떤 걸까...막연하기만 했는데,
구체적으로, 비겁하지 않은 믿음을 말하는 건가 부다. 거짓믿음=겁쟁이믿음?

바울은, 왜? 비겁함에 대해 거론해야 했을까?
주의 증거와 바울의 갇힘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8절)
고 하는 걸로 봐서,
바울의 갇힘은, 그당시 바울을 따르며 복음 전하던 자들에게 수치가 되기도 했을 것을 짐작해본다.
디모데도 슬슬...주 증거 하는 일에 자신감을 잃고 있었을지도...

결국, 바울은 비겁함에서 오는 두려움의 영을 쫓는 해결책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아예 join with me 라고 한다.
함께 죄수 되어 갇혀 버리자고 권한다. 복음이 죄명이라면...

그렇지...디모데가 바울의 갇힘을 부끄럽게 여기면,
어떻게 전도인의 직무와 양육의 <은사>가 극대화되겠는가.
디모데를 어찌하든 주의 사람으로 세워주고 싶어 하는, 영적아버지 바울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 중, 비겁함 때문에 생긴 두려움이 있나 살펴 보게 된다.
그것이 주의 일하는 내 자세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점검해 본다.

묵상 중,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새 두려움을 보았다.
그것의 정체가 비겁함이 맞았다.

나는...나의 많은 부족한 면을 자책하는 <감옥>에 갇혀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고갈된 내 속사람도 그 감옥에 함께 갇혀 있다.
주의 일만 아니라면, 내 인생에 <그런? 종류의 부족한 면> 때문에 고민할 이유는 없다.
원래 나는 지나치게 정 많은 사람이었고, 주위 사람 챙기는 거 병적인 사람이었는데...
왜 예수님을 믿는 연륜이 오래될 수록, 사랑이 바닥나는 걸까?...
아니...예수님 탓 하고 있는 건가...?

바울의 하나님이 내게 꾸중하시며 타이르신다.
너의 부족함을 따지고 앉아 있는 건, 정말 비겁한 짓이다, 너!
지금까진 네가 온전해서 여기까지 온 줄 아니?
부족함을 네 힘으로 없애려 들지 말고, 겸허히 받아 들여라. 부족함을 인정해라.
감옥에서 자유해라. 바울처럼.
더 많은 부족함, 숨겨진 것들을 이번 기회에 말씀 앞에 다- 오픈하는 기회로 사용해라!
감옥에 갇힌 것에 당당했던 바울이야말로 거짓없는 믿음을 소유했던 거란다.

선포하자. 아침마다.
‘하나님은 내 안에 오직 능력의 영을 주셨다. 사랑의 영을 주셨다. 근신의 영을 주셨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요한일서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