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군의 기한을 정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21:11-17
11절,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13절,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이여...
14절, <데마> 땅의 거민들아...
17절,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단, 여섯절 안에 여러 민족들에 대한 경고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에게! 이게 뭐지?
두마에서 게달까지는, 손바닥만 한 대씩 내려 치시고 마는 건가?
너무 대충 혼내시는 거 아닌가?
그런데, 곧!
“다음! 유다학생!” 하시며, 유다만 볶으시는 듯 한 이 분위기는....?
아니! 다른 학생 체벌 받는 사이, 유다가 꾀 좀 피울라치면
어김없이 유다를 체크하신다.
“유다! 팔 내려온다! 팔 번쩍 들어 올렷!”
유난히 유다만 집중 책벌하시는 선도부장 하나님이시다.
다음장에, 유다(이상 골짜기)를 향한 경고타임이 다시 시작되고...
이사야서를 20장이나 큐티했다.
이젠 하나님이 왜 그러시는지 큐티 안 해도 알 것 같다.
남편은 이번에, 십년동안 일했던 업종과는 다른,
새로운 분야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 밑바닥부터 업무를 익혀야 하므로
보수는 초보 수준이다.
지금은 보잘것 없지만, 5년-10년 후를 내다보고,
소망 갖고 또 비젼도 넓히며, 출발한 새 길이다.
기도의 응답대로 이전직장보다 두시간여 일찍 퇴근하므로,
하나님은, 남편이 저녁에 교회가는 것에 대해서도 여유를 주셨다.
현재, 남편은 새 직장에서 남미계 일꾼들과 함께 일하며 동시에 그들을 관리하고,
또 다른 분야의 일들도 습득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남미계 일꾼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성경을 읽으며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혹시 큐티란 걸 하는 건 아닌지...)
카톨릭신자겠거니 했는데, 품행이 단정하고 얌전한 분위기의 그들이
어제는 남편에게, 예수 믿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일하면서 겪게 되는 나름대로의 고충과 불만을 이렇게 해결한다고.
“주일예배때 하나님께 맡기면 감사한 마음으로 출근하게 된답니다!”
이곳 일이 힘들겠지만 예수님만 의지하면 된다고 하더란다.
어제는 남편이 사장님과 팜스프링 거래처엘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사장님이 식사기도를 해 주셨다고 한다.
죽기전에 예배당 하나는 지어야 되지 않겠냐고
말년의 계획을 살짝 내비치시는 사장님을 통해 또!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오늘 말씀과 우리가정의 처지를 묵상할 때,
남편을 <두마>나! <아라비아>나! <데마>나! <게달>처럼!
취급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본심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올린 팔이 내려오지 못하게 <벌서는 중>자세를 만들어 놓으시고,
연약한 것과 부족한 것을 낱낱이 지적해 주시고,
강해지라고! 성숙되라고! 비젼을 구체화하라고! 천국에 소망을 두라고!...
끝없는 열창을 시키시던 하나님의 본심 말이다.
대강 넘어가지 않으시고! 자주자주 치시고! 깎으시고! 혼내셨던,
하나님의 마음이 정말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회복의 은혜가 날마다 새롭다.
이사야 21:16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군의 정한 기한>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품군의 기한을 정하시는 하나님>께서,
남편의 직장을 주관하시며 우리가정을 꼼꼼하게 수리하고 계심에 감사한다.
때가 되매, 이런 작업환경까지도 허락해 주셔서
은혜를 경험하며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격한다.
오늘 묵상은, <내 남편이 다시 실직 당하면 어떡하지?>에 대한 두려움을,
뿌리채 뽑아 가는, <응답의 큐티>가 되었다.
나는 이제, 그 하나님이 정하시는 기한이 어떠하든지,
<항상! 선한 기한>임을 더 잘 인정하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적용>
게달처럼 쇠멸되지 말자!
더 받을 때에도 십일조 드릴 것 없다고 불안해 하던 남편이었다.
턱도 없는 보수 앞에서, 나에게 십일조를 알아서 뗄 <권위>? 를 주었다.
인정사정 없이 뗄 것이다.
11절,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13절,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이여...
14절, <데마> 땅의 거민들아...
17절,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단, 여섯절 안에 여러 민족들에 대한 경고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에게! 이게 뭐지?
두마에서 게달까지는, 손바닥만 한 대씩 내려 치시고 마는 건가?
너무 대충 혼내시는 거 아닌가?
그런데, 곧!
“다음! 유다학생!” 하시며, 유다만 볶으시는 듯 한 이 분위기는....?
아니! 다른 학생 체벌 받는 사이, 유다가 꾀 좀 피울라치면
어김없이 유다를 체크하신다.
“유다! 팔 내려온다! 팔 번쩍 들어 올렷!”
유난히 유다만 집중 책벌하시는 선도부장 하나님이시다.
다음장에, 유다(이상 골짜기)를 향한 경고타임이 다시 시작되고...
이사야서를 20장이나 큐티했다.
이젠 하나님이 왜 그러시는지 큐티 안 해도 알 것 같다.
남편은 이번에, 십년동안 일했던 업종과는 다른,
새로운 분야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 밑바닥부터 업무를 익혀야 하므로
보수는 초보 수준이다.
지금은 보잘것 없지만, 5년-10년 후를 내다보고,
소망 갖고 또 비젼도 넓히며, 출발한 새 길이다.
기도의 응답대로 이전직장보다 두시간여 일찍 퇴근하므로,
하나님은, 남편이 저녁에 교회가는 것에 대해서도 여유를 주셨다.
현재, 남편은 새 직장에서 남미계 일꾼들과 함께 일하며 동시에 그들을 관리하고,
또 다른 분야의 일들도 습득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남미계 일꾼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성경을 읽으며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혹시 큐티란 걸 하는 건 아닌지...)
카톨릭신자겠거니 했는데, 품행이 단정하고 얌전한 분위기의 그들이
어제는 남편에게, 예수 믿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일하면서 겪게 되는 나름대로의 고충과 불만을 이렇게 해결한다고.
“주일예배때 하나님께 맡기면 감사한 마음으로 출근하게 된답니다!”
이곳 일이 힘들겠지만 예수님만 의지하면 된다고 하더란다.
어제는 남편이 사장님과 팜스프링 거래처엘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사장님이 식사기도를 해 주셨다고 한다.
죽기전에 예배당 하나는 지어야 되지 않겠냐고
말년의 계획을 살짝 내비치시는 사장님을 통해 또!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오늘 말씀과 우리가정의 처지를 묵상할 때,
남편을 <두마>나! <아라비아>나! <데마>나! <게달>처럼!
취급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본심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올린 팔이 내려오지 못하게 <벌서는 중>자세를 만들어 놓으시고,
연약한 것과 부족한 것을 낱낱이 지적해 주시고,
강해지라고! 성숙되라고! 비젼을 구체화하라고! 천국에 소망을 두라고!...
끝없는 열창을 시키시던 하나님의 본심 말이다.
대강 넘어가지 않으시고! 자주자주 치시고! 깎으시고! 혼내셨던,
하나님의 마음이 정말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회복의 은혜가 날마다 새롭다.
이사야 21:16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군의 정한 기한>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품군의 기한을 정하시는 하나님>께서,
남편의 직장을 주관하시며 우리가정을 꼼꼼하게 수리하고 계심에 감사한다.
때가 되매, 이런 작업환경까지도 허락해 주셔서
은혜를 경험하며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격한다.
오늘 묵상은, <내 남편이 다시 실직 당하면 어떡하지?>에 대한 두려움을,
뿌리채 뽑아 가는, <응답의 큐티>가 되었다.
나는 이제, 그 하나님이 정하시는 기한이 어떠하든지,
<항상! 선한 기한>임을 더 잘 인정하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적용>
게달처럼 쇠멸되지 말자!
더 받을 때에도 십일조 드릴 것 없다고 불안해 하던 남편이었다.
턱도 없는 보수 앞에서, 나에게 십일조를 알아서 뗄 <권위>? 를 주었다.
인정사정 없이 뗄 것이다.
보수도 적고 새로운 일이기에 불평할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매님과 남편분이 기도응답으로 받은 직장인지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오히려 감사하시는 자매님 부부의 모습에 은혜를 받습니다.
남편분도 완전히 말씀과 기도로 사는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자매님 가정은 축복받을 그릇으로 준비된 것 같애요.
십일조를 인정사정 없이 떼는 자매님의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꼐서 자매님 가정에 인정사정없이 축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자매님 부부^^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