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신 뜻을, 이루어 드리는 기도
이사야 25:1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와...이사야는 이렇게 힘든 중에도 찬양하고 있다.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기사를 행하시는 만군의 여호와를!
정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성실과 진실로 일하시는 근면하신 주를!
작정하신 대로 대적을 멸하실 하나님을 (2절)!
남겨 두신 자들에게 <보장>이 되어 주실 하나님을(4절)!
<그 옛적>부터 <정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동안,
포도주를 담궈 오고 계셨던 하나님을 (6절)!
워낙에 진실된 분이시니,
들포도 섞지 않으시고 극상품 포도만을 골라서 묵히고 또 묵히고!
근본 성실한 분이시니,
술틀을 깨끗이 닦으시고 망대에서 밤낮 지키시며!
오래 저장해 오신 맑은 포도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눈물 흘린 자들!
사명 감당하느라 수치를 감당한 자들! 에게
베풀어 주시겠다 한다.(8절)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사야이다 보니,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사야>닮은 사람들은 그날을 기대해도 좋겠다!
그러면, 나는?
....안 되겠지?
<이 날을 기다리는 자>는 구원의 포도주를 즐기리라 하시고,
<모압같은 자>는 <자기 처소>에서 거름물이나 마시게 될 것이라는데...
왜? 하나님은 이 싯점에서 <모압>을 거론하시는 걸까?
왜? <자기 처소>에서 망할 것을 강조하시는 걸까?
옛적에 정하신 것을 기억하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은
옛적에 거절당한 구원의 손길도 기억하고 계신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분명히, 모압에게도 구원자가 되고 싶으셨다.(16:1-13)
하루 밤에 망하게 될 터이니
너희는 <이 땅 치리자(유다)에게 어린 양을 드리라>고 하셨다.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의를 신속히 행해 줄 것이니
진정한 이 땅 치리자되신 여호와를 피난처 삼으라고 하셨다.
그 때, 모압은 어떻게 반응하리라 하나?
<그 산당> <자기 성소>에서 피곤하도록(성실히) 기도할 것이라 한다.(12절)
하나님은, 이와 같이 <기다린 자>와 그와 같이 <거절한 자>를 향해
<정하신 뜻>을 다음과 같이 보이시리라 한다.
시온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기쁨을!
모압같이 <교활한 손>(11절)을 펴는 자에게는 <헐어져 내린 보장>이 되시므로!
그렇다면, 나도 가망있다!
<모압> 같이 <자기 처소>에서 <자기 뜻대로> 기도하지만 않으면,
이사야 반열에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손>은 어떤 손인가?
나는 <누구 뜻대로>, <어디에서> 기도하고 있는가?
요즘, 내 손은 인터넷에 올리는 큐티노트 때문에 엄청 <성실한 손>이 되었다.
그러나, 까딱하면 내 유익만 챙기는 <교활한 손>이 되겠기에 항상 두려운 마음이다.
많은 결단들을 내리고, 많은 적용들을 겁도 없이 쏟아놓고...
항아리부터 종지까지 엄청난 책임들을 걸고 있는 <못>처럼!
이것저것 갖다 걸다보니 무게를 참아내지 못하는 <못> 될까봐 얼마나 무서운지...
그 중, <중보기도>에 대한 약속들은 왜 그리도 많이 남발? 했는지...
혼자 살짝 큐티하고 조용히 결단하면, 안 지켜도 뭐...알게 뭔가...
이사야서 말씀이 하도 감동을 많이 주니까...
사람들 이름까지 올려가며 구체적으로 결단하곤,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면,
내 손가락이 한 것이지 내가 한 건 아니라고...오리발(오리손) 내밀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
(내게는 너무나도 교활한 손가락이여!)
남의 기도부탁을 너무나도 잘 잊어 버리는 나이기에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어김없이, “잊어버리게 될 지도 몰라요!”
하고 무책임하게 웃고 넘어가던 나!
(약속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진실의 포석을 미리 깔아놓고...)
그런데, 글나눔에 올린 그것이 내게 거룩한 부담이 되어서
어쨌든 아침에 눈만 뜨면! 화장실 가면서도!
<땅>과 한 약속! <사람>에게 대답한 약속! <글나눔>에 올린 약속! 부터 지키려고
입으로 중얼중얼 내뱉고 있다. 1분 또 1분 또 3분...
오늘, 촉박하게 정리하는 이 묵상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흔적은 여실히 드러난다.
아...지금까지 내가 정했다고 생각했던 중보기도 제목들이,
하나님이 이미 옛적에 <정하신 뜻>에서 나온 것이었구나....
내 감동에, 내 인심으로, 정했다고 생각했을 땐 부담이 되더니,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을 <이루어 드리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중보기도에 대한 자세가 막 달라진다.
하나님, 내게 <그늘>(4절)이 되어 주세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중보기도 리스트에 소홀하게 될까봐,
폭양같은 눈초리 앞에서,
<땀>이 삐직삐직 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와...이사야는 이렇게 힘든 중에도 찬양하고 있다.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기사를 행하시는 만군의 여호와를!
정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성실과 진실로 일하시는 근면하신 주를!
작정하신 대로 대적을 멸하실 하나님을 (2절)!
남겨 두신 자들에게 <보장>이 되어 주실 하나님을(4절)!
<그 옛적>부터 <정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동안,
포도주를 담궈 오고 계셨던 하나님을 (6절)!
워낙에 진실된 분이시니,
들포도 섞지 않으시고 극상품 포도만을 골라서 묵히고 또 묵히고!
근본 성실한 분이시니,
술틀을 깨끗이 닦으시고 망대에서 밤낮 지키시며!
오래 저장해 오신 맑은 포도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눈물 흘린 자들!
사명 감당하느라 수치를 감당한 자들! 에게
베풀어 주시겠다 한다.(8절)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사야이다 보니,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사야>닮은 사람들은 그날을 기대해도 좋겠다!
그러면, 나는?
....안 되겠지?
<이 날을 기다리는 자>는 구원의 포도주를 즐기리라 하시고,
<모압같은 자>는 <자기 처소>에서 거름물이나 마시게 될 것이라는데...
왜? 하나님은 이 싯점에서 <모압>을 거론하시는 걸까?
왜? <자기 처소>에서 망할 것을 강조하시는 걸까?
옛적에 정하신 것을 기억하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은
옛적에 거절당한 구원의 손길도 기억하고 계신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분명히, 모압에게도 구원자가 되고 싶으셨다.(16:1-13)
하루 밤에 망하게 될 터이니
너희는 <이 땅 치리자(유다)에게 어린 양을 드리라>고 하셨다.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의를 신속히 행해 줄 것이니
진정한 이 땅 치리자되신 여호와를 피난처 삼으라고 하셨다.
그 때, 모압은 어떻게 반응하리라 하나?
<그 산당> <자기 성소>에서 피곤하도록(성실히) 기도할 것이라 한다.(12절)
하나님은, 이와 같이 <기다린 자>와 그와 같이 <거절한 자>를 향해
<정하신 뜻>을 다음과 같이 보이시리라 한다.
시온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기쁨을!
모압같이 <교활한 손>(11절)을 펴는 자에게는 <헐어져 내린 보장>이 되시므로!
그렇다면, 나도 가망있다!
<모압> 같이 <자기 처소>에서 <자기 뜻대로> 기도하지만 않으면,
이사야 반열에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손>은 어떤 손인가?
나는 <누구 뜻대로>, <어디에서> 기도하고 있는가?
요즘, 내 손은 인터넷에 올리는 큐티노트 때문에 엄청 <성실한 손>이 되었다.
그러나, 까딱하면 내 유익만 챙기는 <교활한 손>이 되겠기에 항상 두려운 마음이다.
많은 결단들을 내리고, 많은 적용들을 겁도 없이 쏟아놓고...
항아리부터 종지까지 엄청난 책임들을 걸고 있는 <못>처럼!
이것저것 갖다 걸다보니 무게를 참아내지 못하는 <못> 될까봐 얼마나 무서운지...
그 중, <중보기도>에 대한 약속들은 왜 그리도 많이 남발? 했는지...
혼자 살짝 큐티하고 조용히 결단하면, 안 지켜도 뭐...알게 뭔가...
이사야서 말씀이 하도 감동을 많이 주니까...
사람들 이름까지 올려가며 구체적으로 결단하곤,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면,
내 손가락이 한 것이지 내가 한 건 아니라고...오리발(오리손) 내밀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
(내게는 너무나도 교활한 손가락이여!)
남의 기도부탁을 너무나도 잘 잊어 버리는 나이기에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어김없이, “잊어버리게 될 지도 몰라요!”
하고 무책임하게 웃고 넘어가던 나!
(약속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진실의 포석을 미리 깔아놓고...)
그런데, 글나눔에 올린 그것이 내게 거룩한 부담이 되어서
어쨌든 아침에 눈만 뜨면! 화장실 가면서도!
<땅>과 한 약속! <사람>에게 대답한 약속! <글나눔>에 올린 약속! 부터 지키려고
입으로 중얼중얼 내뱉고 있다. 1분 또 1분 또 3분...
오늘, 촉박하게 정리하는 이 묵상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흔적은 여실히 드러난다.
아...지금까지 내가 정했다고 생각했던 중보기도 제목들이,
하나님이 이미 옛적에 <정하신 뜻>에서 나온 것이었구나....
내 감동에, 내 인심으로, 정했다고 생각했을 땐 부담이 되더니,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을 <이루어 드리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중보기도에 대한 자세가 막 달라진다.
하나님, 내게 <그늘>(4절)이 되어 주세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중보기도 리스트에 소홀하게 될까봐,
폭양같은 눈초리 앞에서,
<땀>이 삐직삐직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