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욥 31:4)

 

하나님은 나의 길을 감찰하시고 나의 걸음까지도 세시는 분이라고 욥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극심한 고난속에 있는 욥이 자신의 작은

걸음까지도 "다" 세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기에 할 수 있었던 고백이 아닐까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 부터 반복되는 욥의 말은,  "언제 나의 행위가 허탄하였으며.....   

언제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던가....  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내가 언제 그의 사정을 멸시하였던가....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내가 언제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게 된 것을 보고도.....  내가 언제 금으로 내 소망을 삼고....

언제 재물의 풍부함으로 기뻐하였던가....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였으며...

내가 언제 큰 무리를 두려워하며 잠잠하고..... 언제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산물을 먹고.....

 

그리고 오늘 월요일이 되어서야 드디어 "욥의 말이 그치니라." (욥31:40)

정말 욥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하나님이 그의 발걸음을 세셔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고 확신하고 있는가 보다.  대단한 확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나는 어떤가? 

 

솔직히 나의 발걸음을 하나 하나 세밀히 세시는 하나님이 오히려 나는 마음에 부담으로 느껴진다.

"내가 언제.." 라는 욥의 말에 내 삶을 비추어 봐도 걸려 넘어지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기에....

 나는,

내 마음이 세상의 화려함에 유혹되어 백화점 문 열기를 엿보아 기다렸던 때,

내 의견만 중요해서 아이들과 남편의 사정을 듣지도 않고 멸시했었을 때, 

불쌍한 자를 보아도 무관심 했을 때,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았을 때 소리없이 은근히 기뻐하였을 때,

나에게 잘못한 자가 벌 받을때 속으로 '쌤통' 하며 기뻐하였을 때, 

그리고 값을 내지 않고 공짜로 무엇을 얻고 먹었을때, 등등....  그치지 못할 만큼 많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분명히 실수 할 것이다.

 

그래서 나의 걸음을 "다" 세시는 하나님이 부담스럽지만 예수님이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내 힘으로 욥처럼 순전한 삶을 살 수 없지만 예수님의 은혜로 할 수있다는 것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그시대의 욥은 "내가 언제..." 라고 말하며 자신에 순전함을 나타냈지만

나는 "그리스도로 인해 이제는...." 라는 나의 인생 고백이 되기를 원한다. 

 

적용: 나의 걸음을 "다" 세시는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며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