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12 ()         <욥기 7:1~10>

 

욥의 몸에서는 구더기가 슬금 슬금 기어 다니고

상처는 아물을 틈도 없이 곪고 터지고

아무것도 없는 신세도 처량해 죽겠는데

자신의 몰골을 보면서 얼마나 더 비관이 되었을까?

그의 입에서 희망적인 말이 나올 까닭이 없다.

과연 욥의 그러한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욥을 정죄하시고 책망하실 수 있을까?

 

그저 원망과 한숨과 눈물지음을 밥 먹듯이 하다가도

가끔가다 제 정신이 들면 간간이 하나님께 호소도 해 본다.

 

“Remember, O God, that my life is but a breath…” <7절>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 가운데에서도

누군가에게, 특히 하나님께 기억이 되어진다는 사실은 굉장한 위로이다.

 

그런데

욥의 고통이 시작된후 38장이 되어서야 드디어 등장하시는 하나님은

대체 1장부터 37장까지의 시간동안 무얼하고 계셨을까?

잔인하고도 냉정한 판단으로 욥을 몰아치는

세 친구와 엘리후의 모든 말들을 다 allow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

 

끊임없는 욥의 말 가운데 침묵으로 다 듣고 계시는 하나님을

욥기의 구절 구절에서 믿음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욥은 자신의 평생에 행복한 날이 다시 오기나 할까? 의심마저 든다.

베틀의 북보다도 더 빨리 날아 가는 자신의 인생의 끝자락에는

소망이 아닌 절망이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한다.

 

요즘 욥기를 통해

그 어느때의 묵상보다도 많은 유익을 누리고 있다.

욥의 무거운 삶의 무게를 보고나서

...  나의 삶을 뒤돌아 보노라면

내가 무겁다고 여기던 issue들이 오히려 새털처럼 가볍게 여겨지곤 한다.

작은 문제들에 묶여 전전긍긍하던 나의 좁은 마음이

오히려 욥기 묵상을 통해 조금씩 확장되어져 가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이런 저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자기 점검과 성찰로 이어진다.

나는 지금 왜 행복해 하는가?

나는 하나님께 왜 감사하다고 하는가?

단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것들 때문에 그런것은 아닌가?

내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순간이 온다해도

하나님 앞에 동일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나의 대답은 장담할 수 없다.”이다.

 

그렇기에,

그런때가 오기전에 현재의 삶에 감사하며 살자...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 욥처럼 아파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할 수 있을때 위로하자.

 

하나님께서는 욥기를 시작한 이후 ㅇㅇㅇ 님을 자꾸 기억하게 하신다.

차일 피일그러고 있었는데

어제 목요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화초를 샀다.

 

멀리 사시는것도 아닌데

오늘중으로 ㅇㅇㅇ께 전화를 드리고 잠시 방문할 계획이다.

그저 그분께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다면 

누군가가 그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망으로 되어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