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그릇 싸이즈는 내가 정하는거야 ”

누가 복음 13:18~19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가 마치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신다.
그것이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든다고 하신다.

아침에 이 말씀을 묵상을 할때 새들이 깃든 나무가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머릿속에 그려보며 상상해 보았다.
  
'아마도 새들이 쉬었다 가기 좋은 잎사귀가 무성한 그늘진 나무일거야.
그 자태가 아름답고 남들이 보기에도 잘 생긴 품위있는 나무일거야.
나도 그런 나무가 되자.  
사람들이 내게 와서 편히 쉬어 가도록 품어 주는 나무가 되자' 고 다짐을 했다.

그동안 누가복음에서 묵상한것을 적용, 실천하는 마음으로 교회의
어느 두 자매와 예쁜 식당에 가서 아침 식사를 하며 참 좋은 시간을 가졌다.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며 마치 자태있고 아름다운 나무처럼…

그리고는 반나절이 지났다.   오후에 마음이 좀 낙심되는 일이 있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힘든 일이 있어도 나름대로 감사하며
인내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나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주님, 그동안 제게 주신 은혜가 감사해서 정말 열심히 했잖아요?
근데 왜 제가 이렇게 주님일을 하면서 서글퍼야하나요?
제 남편이 속을 썩이나요?   아님 제 자식이 속을 썩이나요?
제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는 이내 나의 그런 못난 모습으로 인해 자책까지도 했다.
‘에잇, 이렇게 마음이 상하는데 나 같은 나무에 무슨 새들이 깃들겠어?’
‘나같이 요동하는 나무에서 어떻게 새들이 쉴수가 있겠어? ’
그러나 묵상하는 사람이니 내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묵상 밖에는…
다시 한번 새들이 깃든 나무를 묵상해 보았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침에 묵상했던 그 아름다운 나무는 어디로 가고 그 자리에 가지의 마디 마디가 굵직하고,
나무가 겪은 세월을 말해주듯 약간은 험하게 생긴 나무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듯 했다.
“온갖 새들이 쉬어갈수 있는 나무는 결코 아름답기만 한 나무는 아니란다.
폭풍우와 세월의 고난을 견뎌낼때마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견고한 나무란다.”
그리고 나와 주님과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졌다.
“근데요 주님, 저를 꼭 이렇게 독하게 키우셔야해요?”
“아니란다.  정금같이 쓰임받기 위해 단련을 받는거지”
“에이, 그래도 제 그릇은 요만큼밖에 안되는데 감당할만큼만 주셔야죠?”
“얘야, 그릇 싸이즈는 네가 정하는게 아니라 내가 정하는거란다.”
나는 그 이튿날도 당황할 일이 생겨서 마음이 콩딱거렸지만
전날 묵상한 험상궂고 견고한 나무를 생각해 보았다.
‘아하!  낙심할 일이 아니구나.  
주님, 나의 가지 마디가 또 한번 굵어 지네요.  감사해요!’
나의 심령 깊은 곳에서 기쁨이 살며시 피어나는것을 느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