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누가복음의 15장을 묵상하게 되는군요.
재작년 가을에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던 "헨리 나우웬"의 "탕자의 귀향"을 읽고 작성했던 독후감입니다.나누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요약한 내용도 있으니 원하시는 분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헨리 나우웬의 "탕자의 귀향"을 읽고 나서

   우리는 누가 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너무 많이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자유와 행복을 찾아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는 자여"라고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외면하고 자기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채 욕망으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해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린 채 무일푼으로 되돌아옵니다. 그가 돌아가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기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 자신의 가장 내면에 있는 자아, 즉 자신이 아들의 신분임을 재발견하고 죽음 대신 생명을 선택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큰 아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저자는 큰 아들도 역시 잃어버린 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 그는 착한 아들로서 집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매일 열심히 일하고 자신의 모든 의무를 완수했지만, 속으로 그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불만을 토로하는 큰 아들에게 순종과 책임은 짐이 되어있었고, 섬김은 종살이가 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집에 머물러 있었고 다른 데로 가지 않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여전히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영적인 면에서 볼 때 욕망에 찬 작은 아들보다는 분노에 찬 큰 아들이 나와 더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욕망과 분노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일까요? 정의로운 사람들 사이에 더 많은 원망이 있으며 성도들 가운데 더 많은 비판과 편견이 있습니다. 원망하는 성도의 상실감은 선하고 덕스러운 욕망과 너무나 밀접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정체를 밝혀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존재의 가장 깊숙한 부분에 뿌리를 둔 차가운 분노로부터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욕망으로 인한 탈선으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보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감사만이 큰 아들의 회심을 가능하게 합니다. 신뢰는 아버지께서 내가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원하신다는 깊은 마음의 확신이고, 감사는 인생의 모든 것이 사랑의 선물로서 주어진 것임을 인정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입니다. 이 둘은 모두 위험을 감수 할 용기를 필요로 하는 훈련들 입니다.

   이뿐 아니라 저자는 우리에게 돌아오는 아들을 맞아주고 용서해 주며 가정을 제공해 주는 아버지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최후의 소명은 다름 아니라 그 아버지처럼 되는 것이며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그분의 거룩한 자비를 보여주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올 때, 어린아이로 남아있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돌아온 것 입니다.  아버지에게로의 귀향은 궁극적으로 아버지가 되겠다는 도전인 것 입니다. 당신 속에 있는 두 아들의 모습을 점점 자비로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화시키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