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2:13-21 (하나님 앞에서의 부요함)  2008/02/12

1. 탐심
무리 중에 있었던 한 사람이다.
제자가 아닌 무리 중에서...
아직 변화되어야 할 사람, 그런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지금은 무지하고 어리석지만...

그가 형으로 말미암아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가보다.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13)

웃기는 일같다. 예수님이 명한다고 듣겠는가?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를 보면, 그래도 그의 형이 예수님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거나, 존경하거나, 그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을 따라가며, 그의 말씀도 들었겠지...
그런데 현실의 삶에서는 쉽지 않은가 보다!!!
돈 앞에서 욕심을 내고 있다.

그런데 동생도 마찬가지이다.
이 일에 형이 좋아하는 그 예수님을 이용하고 있다.
예수님은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가 아니다.
역시 그도 탐심이 있는 자이다.

아직은 무리 가운데 속한 우리들...
각자 각자가 탐심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간다.
비교하면서, 정당한 이유를 대면서...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려 든다.
그분의 은혜를 이용한다.
그분의 관대하심을 이용한다.
그분의 자비하심을 이용한다.

이 싸움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다.
'내(예수님)가 누구냐?'(14)
그리고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깨달아라(15)!

나의 눈이 쉽게 사라지는 이 땅의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을 사모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허락하시는 분, 예수님께 나의 마음을 드리기를 원한다.
내가 그 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그 분이 나를 이용하시도록...

난 언제쯤, 무리에서 나와 제자들 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아니, 아직 예수님을 따라가는 무리속에 있음이 은혜임을 깨닫는다.

2. 하나님 앞에서 부요한 자
한 부자가 있다.
정말 부자다!!!
곡식이 쌓아 둘 곳이 없어, 있던 곳간을 헐고 새롭게 짓는다.
쌓아 둘 곡식을 보면 자신의 영혼이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19).
맞다! 이 땅에서 이런 자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클까?
분명히 만족이 있다.
재물이 가져오는 당당함이 있고, 부요함이 있고, 평안함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나도 이런 부자가 부럽다.
이 땅에서 나도 부요한 자가 되고 싶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한다.
그런 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라고!(21)
이 땅에서만 누리는 만족감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그 부요함을 알지 못하는 자라고...

왜, 우리는 이 땅에서의 부요함을 구하는가?
먼저는 오늘 밤에 내가 죽을 수 있는 유한한 존재임을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20).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부요함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21).

그런데 이 둘이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하나님 앞에서의 부요함을 갈구하는 인생은 바로, 오늘 당장 죽으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아는 사람이라고!

'죽음'은 두려운 대상이다.
이것을 생각하는 순간, 내가 지금 소유한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늘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이 아직 친근하지 못하다.
이것이 내게 평안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기다려져야만 하는데...
'죽음'을 묵상하는 습관이 멈추었다.
중환자실에 갔다 온 이후로, 나는 언제 갑자기 심장이 멈출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머리 속에 들 때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였는데. 계속 살아가고 있으니 무디어졌는가 보다.

'죽음'이라는 그림자 속에서도 내 영혼의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가루를 바라보며, 눈을 감고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요즘은 지금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은 이 땅의 것이 아닌, 주님께서 주시는 그 부요함을 경험하고 싶다.

나의 '유한함'이 방어기제가 아닌, 하나님의 부요함을 향해 열려지는 '창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