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고 한다(31:3)

왜 돕는 자까지도 치실까?
2절에 <행악을 돕는 자...>라고 말씀한 걸 보면,
혹 내 쪽에서 돕는다고 한 것이, 도리어 행악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도 있겠다.
내 도움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다면
<분별력 결여된 도움의 손>이 하나님 앞에서는 <행악의 손>일 수 도 있겠다.

하나님이 만지시도록 내 손을 떼어 드리지 않는다면
그도 죽고 나도 죽게 되는 것이다.

큰아들 준의 성적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면...

작년 여름, 시편 묵상 때,
아들에게 공부에 대한 지나친 압박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공부보다 더 정금같이 여기는 엄마가 되기로 한 적용이었다.

뚝뚝 떨어지는 시험지 점수를 받아 볼 때마다,
내 심장도 뚝뚝 떨어졌다.
하필, 6학년 들어갈 때, 이런 적용을 시작해서...중학교는 어떻게 가라고...
시기를 잘못 택했다며...후회도 몇 달 했었다.

그 때마다, 말씀 붙잡고 과거(애굽)의 습성대로 아들을 다루지 않으려 애쓰며,
내겐 너무나도 불친절한 점수들과 아들을, 친절하게 칭찬해 주었다.

사실...이렇게 아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키우면,
아들의 성적이 기적같이 좋아지지 않을까...하는 탐욕의 심리가 있었다.
사특한 마음이 들어가서 일까...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나의 이 암적 정욕마저도, 날마다 큐티노트에 못 박으며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

그러던, 어제였다.
아들이 간만에! 90점짜리 <세계사> 시험지를 들고 왔다.
처음엔 감사했다가, 실수로 아는 것을 틀려서 백점을 놓쳤다고 하니,
너무 아깝다는 마음이 들어서 진심어린 칭찬을 해 주지 못했다.

여름 방학 전에, 마지막 한 번의 시험이 남았다는 말이,
내게는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왔다.
내가 빡세게 도와주고, 예상 문제를 뽑아서! 달달 외우게 만들면!
예전처럼 그까짓 백점 만들어 주는 것은 식은 죽 먹기겠다! 싶은 거였다.

그런데, 어제, <하나님이 좋은 말로 할 때, 잘 알아듣기> 뿐 아니라,
아들에게도 <강한 말 말고 부드럽게 말하기>를 적용한 날이라서,
차마 내 총명한? 모략을 베풀진 못했다.
그러구선, 어젯 밤, 잠자리에 드는 아들에게 기도는 해 주지 않고,
세계사 책을 꼭 챙겨 오라고 당부를 했다.

이미 망친 6학년 성적들이라지만, 막판에라도 만회시켜 보겠다는 내 의지가
아직도!  저어-- 밑바닥에서!  죽지 않고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묵상 중에 확실하게 본다.
마음을 돌이킨다.
오늘 말씀을, 내게 주시는 경계의 메세지로 받겠다.
경계를 넘지 않겠다.
도와 주지 않겠다.
지금껏처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

도와주고 결과가 나쁘면, 내가 넘어질 것이고
엄마가 실컷 도와 주었는데도 성적이 나쁘면, 아들도 넘어질 것이다.
도와주고 결과가 좋으면, 다음에 또 도와주고 싶을 것이고
아들은 혼자 힘으로, 힘든 중학교 과제들을 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아들을, 자립심 강한 아이로 키울 수 있도록
내 손에 수갑을 채우시는 나의 하나님이 정말 고맙기만 하다.

그러고보니, 지난 일년,
아들의 불친절한 성적을 향해 쏟았던 나의 칭찬들처럼
하나님도 부족한 나를, 많이 칭찬해 주셨던 것 같다.

그래...그 하나님의 마음으로 또 한번, 친절해 지자!
방학시작 하는 날, 받아 올 아들의 6학년 성적에 대해 무조건 칭찬해 주겠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을 아들에게 주겠다.

이사야 31:9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계신대.  
우리, 이번 여름방학 때 예루살렘에 진득이 머물자. 여전히 큐티하자!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