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사님, 포도주 대신에 삼겹살 어떠세요?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말세,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임박한 때,
그 날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단다.
자기를 사랑하는것이 뭐가 나쁘다는것일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내 자신을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남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것이 아닌가?
혹, 여기서 말하는 <사랑>을 원어로 보면 나쁜 종류의 사랑인가?
나의 지식의 한계를 느끼며 처녀적부터 갖고 있던 관주 성경에 손이 갔다.
성경은 빌립보서 2:21와 비교해 보라고 나를 자상하게 안내해 준다.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빌 2:21>
빌립보서를 찾아보니 이제는 고린도 전서를 보라고 한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전 10:24>
아하, 그럼 그렇지.
<자기 사랑>이란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행동을 말하는구나.
그런 사람이 남의 유익을 구하며 남을 사랑할리가 없지.
오늘 말씀에 구구절절이 나열된 모든것들은 자기를 사랑한 결과들이구나~
30년이 다 된 나의 낡은 성경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번달 생명의 삶에 실렸던 글.
"올해 발렌타인데이에 누구에게 가장 많이 선물했는지를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자기 자신> 이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돈을 사랑하며, 자긍 교만하며,
훼방,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작년 언제였던가?
요즘 한국에서는 소위 “귀차니스트”가 유행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유행에 뒤진 편이라 이 귀차니즘의 귀차니스트 이야기도 이미 지나간
옛날말인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힌국에서는 만사가 귀찮은 게으른 사람들을
위하여 편리한 device들이 계속 개발되어 히트 상품으로 팔리고 있단다.
손 하나 까딱 안하고 할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이다.
나의 입에도 습관처럼 배어 버린 “아, 귀찮아~” 라는 말.
나는 개인적으로 귀차니즘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신
가르치심에 거스리는 사고 방식이 아닌가 싶다.
타인을 향한 삶이 예수님의 방식이라면 나 자신에게 소용되는 일외에는
만사가 다 귀찮다는 귀차니즘들의 철학.
이웃은 커녕 내 몸하나 움직이는것도 귀찮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것조차도
귀찮아 하는 것이 요즘의 실태가 아닌가 싶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꼭 일주일전인 지난 금요일에
적용, 실천하기로 한것을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오늘 행동으로 옮겼다.
딱딱하고 엄격한 목회 서신속에서도 데모데에게
“이제는 너의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며
안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자상한 바울 스승의 모습을 만났었다.
나도 그 스승의 그 제자이고 싶어라 !
그때 적용으로 교회의 연소한 전도사님들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주일 내내 고민했었는데 드디어 정했다.
몸이 약하신 그 전도사님이 삼겹살을 좋아하신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유초등부 전도사님이니 이젠 우리 아이들과 상관이 없지만
VBS에 봉사 하러 가는 딸을 데려다 주는 남편의 손에 짤막한 편지와
식사비가 든 봉투를 건네주며 남편에게 미안해 했다.
"자기 혼자서 힘들게 돈 버는데 맨날 나 큐티하면서 혼자 적용, 실천 다하는것 같아서 미안" 하다고.
이럴때 우리 남편 꼭 하는 말,
“으응~ 돈은 쓰라고 버는거지 뭐…”
" OOO 전도사님,
수고 많으시네요.
딤전 5:23절 말씀 적용, 실천으로 드리는 것이니 넘 부담갖지 마세요.
함께 애쓰고 있는 다른 연소한 전도사님들과 함께 몸보신 하세요.
전도사님, 포도주 한잔 대신에 삼겹살은 어떠세요? ^^ ”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말세,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임박한 때,
그 날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단다.
자기를 사랑하는것이 뭐가 나쁘다는것일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내 자신을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남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것이 아닌가?
혹, 여기서 말하는 <사랑>을 원어로 보면 나쁜 종류의 사랑인가?
나의 지식의 한계를 느끼며 처녀적부터 갖고 있던 관주 성경에 손이 갔다.
성경은 빌립보서 2:21와 비교해 보라고 나를 자상하게 안내해 준다.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빌 2:21>
빌립보서를 찾아보니 이제는 고린도 전서를 보라고 한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전 10:24>
아하, 그럼 그렇지.
<자기 사랑>이란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행동을 말하는구나.
그런 사람이 남의 유익을 구하며 남을 사랑할리가 없지.
오늘 말씀에 구구절절이 나열된 모든것들은 자기를 사랑한 결과들이구나~
30년이 다 된 나의 낡은 성경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번달 생명의 삶에 실렸던 글.
"올해 발렌타인데이에 누구에게 가장 많이 선물했는지를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자기 자신> 이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돈을 사랑하며, 자긍 교만하며,
훼방,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작년 언제였던가?
요즘 한국에서는 소위 “귀차니스트”가 유행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유행에 뒤진 편이라 이 귀차니즘의 귀차니스트 이야기도 이미 지나간
옛날말인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힌국에서는 만사가 귀찮은 게으른 사람들을
위하여 편리한 device들이 계속 개발되어 히트 상품으로 팔리고 있단다.
손 하나 까딱 안하고 할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이다.
나의 입에도 습관처럼 배어 버린 “아, 귀찮아~” 라는 말.
나는 개인적으로 귀차니즘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신
가르치심에 거스리는 사고 방식이 아닌가 싶다.
타인을 향한 삶이 예수님의 방식이라면 나 자신에게 소용되는 일외에는
만사가 다 귀찮다는 귀차니즘들의 철학.
이웃은 커녕 내 몸하나 움직이는것도 귀찮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것조차도
귀찮아 하는 것이 요즘의 실태가 아닌가 싶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꼭 일주일전인 지난 금요일에
적용, 실천하기로 한것을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오늘 행동으로 옮겼다.
딱딱하고 엄격한 목회 서신속에서도 데모데에게
“이제는 너의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며
안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자상한 바울 스승의 모습을 만났었다.
나도 그 스승의 그 제자이고 싶어라 !
그때 적용으로 교회의 연소한 전도사님들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주일 내내 고민했었는데 드디어 정했다.
몸이 약하신 그 전도사님이 삼겹살을 좋아하신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유초등부 전도사님이니 이젠 우리 아이들과 상관이 없지만
VBS에 봉사 하러 가는 딸을 데려다 주는 남편의 손에 짤막한 편지와
식사비가 든 봉투를 건네주며 남편에게 미안해 했다.
"자기 혼자서 힘들게 돈 버는데 맨날 나 큐티하면서 혼자 적용, 실천 다하는것 같아서 미안" 하다고.
이럴때 우리 남편 꼭 하는 말,
“으응~ 돈은 쓰라고 버는거지 뭐…”
" OOO 전도사님,
수고 많으시네요.
딤전 5:23절 말씀 적용, 실천으로 드리는 것이니 넘 부담갖지 마세요.
함께 애쓰고 있는 다른 연소한 전도사님들과 함께 몸보신 하세요.
전도사님, 포도주 한잔 대신에 삼겹살은 어떠세요? ^^ ”
지난 번엔 영어를, 이번에는 러시아 어 하시는 줄 알고 쫄았습니다.
재밌는 것 배웠네요.
이웃 섬기는 것을 귀챦아 하지 않는 수희 자매님의 큐티적용 아름답습니다.
(나도 삼겹살 되게 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