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지 않는 비결
내게 주신 말씀
1.은혜 속에서 강하고(1절)
2.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고(9절)
은혜 속에서 강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흔들림이 없다는 것일까? 강하고 담대하란 뜻일까? 아님 마음을 굳게 먹으라는 뜻일까?
본문에서는 강함(strong)이란 단어는 원어로는 충만함이라는 뜻이라고 남편이 가르쳐 주었다.
삶의 마지막을 앞둔 노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맡아 담임 목회를 하고있는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부탁하고 있다.
"내 아들아,그리스도의 은혜로 충만해져라"
연소한 나이,어린 나이에 에베소 교회를 이끌어 나가야 했던 디모데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은혜로 충만해지는 것'이었다.
강하다는 말과 충만하다는 말이 서로 깊은 연관이 있음을 묵상중 알게 되었다.
충만해지면 강해질 수 있다.
은혜가 충만하면 마음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담대해지기도 하고 무식하다 싶은 용기와 믿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어떻게 충만해 질 수 있을까?
지금 내게는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과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분주함을 핑계로 말씀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무지이하게 짧아졌다.
목요모임에 나가지 못하게 되어서 집에서 가까운 화요모임으로 옮겼는데,
지난 학기에 딱 두번 나갔다.
묵상 sharing을 못하게 되면서, sharing의 힘과 유익을 뼈저리게 절감하는 중이다..
어느 선전에 '기쁨 두배'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큐티shaing은 '은혜 따따불'이란 표현이 어울릴 듯 싶다.
이런 유익을 포기해야 하는 나의 여건들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요즈음 이었다.
그래서일까?
유독' 얽매이는 자'(4절) '매이는데 까지'(9절) 라는 말들이 눈에 들어왔다.
큐티 라이프 모임에 푸우-욱 발담그지 못하게 하는여건들, 사모라는 이름이 얽매임으로 느껴지곤 한다.
6월에 있는 JAMA에 보내 달라고 기도 했는데, 갈 수 없게 되었다.
얼마전 복음 방송에서 좋은 프로그램 하날 맡아 진행할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포기해야 했다.
나 같은 사람한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까 싶어 꽉 잡고 싶었는데, 놔야했다.
나를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오는 기회도 놓치게 만드는 듯한 느낌,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 슬슬 올라왔다.
그런데,오늘 본문엔 진짜로 묶여 있는 사람이 있었다.
죄인 아닌 죄인 되어 더럽고 찬 감옥 속에 묶여 있었다.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억울하게 감옥에 내동댕이쳐진 노사도.
그러나,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리라"
말씀전하는 사람은 매여 있는데 그말씀은 매이지 않는 비결은 어디 있었을까?
여러가지 이유들을 생각하는 중 한가지가 깊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바로 '방법을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바울 자신은 매였으나 복음은 매이지 않는 방법,
매인 몸으로 할수 있는 복음전도,
그것은 편지쓰기였다.
투옥 될때마다, 직접가서 말로 외칠 수 없어 깝깝할때, 그는 교회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댔다.
편지 쓸 도구도 마땅치 않고 배달할 우편부도 없지만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복음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더 멀리 더 오래 기억되고 전해지도록 글로 마음껏 풀어 놓았다.
이미 그 편지들을 우린 읽은 바 있다.
구구절절 은혜되는 옥중서신들이다.
상황을 탓하고 있던 난 부끄러워진다.
매여 있지도 않으면서 크게 매여 고립되있는양 착각했다 싶다.
상황과 여건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있는 최선을 찿아내는 것은 나의 몫임을 깨닫는다.
나도 방법을 바꾸리라.
직접가서 테이블에서 얼굴 볼수도, 말할수도 없지만, 편지를 쓰리라.
종이도 연필도 우체부도 필요없이 이메일을 날리리라.
바울 선생이 얘기해주는듯 하다.
'너는 묶여 있는게 아니라고, 단지 방법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묶여 있더라도 자유로울수 있다고'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차가 없어서 발이 묶이고,
돈이 없어서 행동이 묶이고,
건강을 잃어서 모든 것이 묶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마음이 묶여있는 내 사랑하는 자매들, 친구들.
묶여 있을지라도 그것에 얽매이지는 말라고 바울사도는 격려하신다.
나의 발목을 잡고 얽어매고 있는 현실에서 나를 풀어낼 한가지 방법,
그것은 내 안에서 말씀이 매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말씀을 더 자유롭게 풀어내는 것,
그리스도의 은혜안에서 더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바로 그것이다.
적용) 1.이메일 보내는것 더 부지런히 배울것.
2.일주일에 한번은 큐티 라이프 웹사이트에 묵상나눔 올릴것
1.은혜 속에서 강하고(1절)
2.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고(9절)
은혜 속에서 강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흔들림이 없다는 것일까? 강하고 담대하란 뜻일까? 아님 마음을 굳게 먹으라는 뜻일까?
본문에서는 강함(strong)이란 단어는 원어로는 충만함이라는 뜻이라고 남편이 가르쳐 주었다.
삶의 마지막을 앞둔 노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맡아 담임 목회를 하고있는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부탁하고 있다.
"내 아들아,그리스도의 은혜로 충만해져라"
연소한 나이,어린 나이에 에베소 교회를 이끌어 나가야 했던 디모데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은혜로 충만해지는 것'이었다.
강하다는 말과 충만하다는 말이 서로 깊은 연관이 있음을 묵상중 알게 되었다.
충만해지면 강해질 수 있다.
은혜가 충만하면 마음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담대해지기도 하고 무식하다 싶은 용기와 믿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어떻게 충만해 질 수 있을까?
지금 내게는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과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분주함을 핑계로 말씀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무지이하게 짧아졌다.
목요모임에 나가지 못하게 되어서 집에서 가까운 화요모임으로 옮겼는데,
지난 학기에 딱 두번 나갔다.
묵상 sharing을 못하게 되면서, sharing의 힘과 유익을 뼈저리게 절감하는 중이다..
어느 선전에 '기쁨 두배'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큐티shaing은 '은혜 따따불'이란 표현이 어울릴 듯 싶다.
이런 유익을 포기해야 하는 나의 여건들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요즈음 이었다.
그래서일까?
유독' 얽매이는 자'(4절) '매이는데 까지'(9절) 라는 말들이 눈에 들어왔다.
큐티 라이프 모임에 푸우-욱 발담그지 못하게 하는여건들, 사모라는 이름이 얽매임으로 느껴지곤 한다.
6월에 있는 JAMA에 보내 달라고 기도 했는데, 갈 수 없게 되었다.
얼마전 복음 방송에서 좋은 프로그램 하날 맡아 진행할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포기해야 했다.
나 같은 사람한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까 싶어 꽉 잡고 싶었는데, 놔야했다.
나를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오는 기회도 놓치게 만드는 듯한 느낌,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 슬슬 올라왔다.
그런데,오늘 본문엔 진짜로 묶여 있는 사람이 있었다.
죄인 아닌 죄인 되어 더럽고 찬 감옥 속에 묶여 있었다.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억울하게 감옥에 내동댕이쳐진 노사도.
그러나,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리라"
말씀전하는 사람은 매여 있는데 그말씀은 매이지 않는 비결은 어디 있었을까?
여러가지 이유들을 생각하는 중 한가지가 깊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바로 '방법을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바울 자신은 매였으나 복음은 매이지 않는 방법,
매인 몸으로 할수 있는 복음전도,
그것은 편지쓰기였다.
투옥 될때마다, 직접가서 말로 외칠 수 없어 깝깝할때, 그는 교회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댔다.
편지 쓸 도구도 마땅치 않고 배달할 우편부도 없지만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복음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더 멀리 더 오래 기억되고 전해지도록 글로 마음껏 풀어 놓았다.
이미 그 편지들을 우린 읽은 바 있다.
구구절절 은혜되는 옥중서신들이다.
상황을 탓하고 있던 난 부끄러워진다.
매여 있지도 않으면서 크게 매여 고립되있는양 착각했다 싶다.
상황과 여건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있는 최선을 찿아내는 것은 나의 몫임을 깨닫는다.
나도 방법을 바꾸리라.
직접가서 테이블에서 얼굴 볼수도, 말할수도 없지만, 편지를 쓰리라.
종이도 연필도 우체부도 필요없이 이메일을 날리리라.
바울 선생이 얘기해주는듯 하다.
'너는 묶여 있는게 아니라고, 단지 방법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묶여 있더라도 자유로울수 있다고'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차가 없어서 발이 묶이고,
돈이 없어서 행동이 묶이고,
건강을 잃어서 모든 것이 묶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마음이 묶여있는 내 사랑하는 자매들, 친구들.
묶여 있을지라도 그것에 얽매이지는 말라고 바울사도는 격려하신다.
나의 발목을 잡고 얽어매고 있는 현실에서 나를 풀어낼 한가지 방법,
그것은 내 안에서 말씀이 매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말씀을 더 자유롭게 풀어내는 것,
그리스도의 은혜안에서 더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바로 그것이다.
적용) 1.이메일 보내는것 더 부지런히 배울것.
2.일주일에 한번은 큐티 라이프 웹사이트에 묵상나눔 올릴것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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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9
08.06.27.
사모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반가워요.
사모님의 나눔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와~ 방송국에서 제의도 들어오고...
정말 멋있네요. 역시 달라요... ^ ^
저도 그날 사모님과 같은 필이 꽂혀서 그 내용 묵상했는데
이렇게 사모님의 나눔글을 보니 은혜가 한층 더 합니다.
저도 요즘 매일 약 마흔명의 자매님들에게 약식 질문지를
이멜로 날리고 있습니다.
한 자매님이라도 큐티맛을 보았으면 하는 희망과 함께요.
바울의 육신은 매였으나 말씀은 매이지 않고 훨훨 날아서
보란듯이 지금 시간에도 우리의 이멜을 타고 자매님들에게
열심히 배달되니 세월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젯밤 처음으로 저희 교회의 웹 사이트에 질문지를 올려 놓았습니다.
용기가 필요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교회 웹에 올린 질문지를 통해 전 지역에 큐티 운동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모님 건강하시고요, 앞으로도 웹에서 자주 뵙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사모님의 나눔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와~ 방송국에서 제의도 들어오고...
정말 멋있네요. 역시 달라요... ^ ^
저도 그날 사모님과 같은 필이 꽂혀서 그 내용 묵상했는데
이렇게 사모님의 나눔글을 보니 은혜가 한층 더 합니다.
저도 요즘 매일 약 마흔명의 자매님들에게 약식 질문지를
이멜로 날리고 있습니다.
한 자매님이라도 큐티맛을 보았으면 하는 희망과 함께요.
바울의 육신은 매였으나 말씀은 매이지 않고 훨훨 날아서
보란듯이 지금 시간에도 우리의 이멜을 타고 자매님들에게
열심히 배달되니 세월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젯밤 처음으로 저희 교회의 웹 사이트에 질문지를 올려 놓았습니다.
용기가 필요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교회 웹에 올린 질문지를 통해 전 지역에 큐티 운동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모님 건강하시고요, 앞으로도 웹에서 자주 뵙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10:05
08.06.27.
지연사모님 이렇게 웹 싸이트에서 만나니 방가 방가.
삼 년전 방주에서 나온 간증을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사도 바울같은 간증을 듣네요.
저는 타자 치는 것 잘 못해 얽매였는데 이제 마구 치는 방법을
간구해야 겠읍니다. 얽매이지 않게...(오늘의 적용) ^ ^ ;;
삼 년전 방주에서 나온 간증을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사도 바울같은 간증을 듣네요.
저는 타자 치는 것 잘 못해 얽매였는데 이제 마구 치는 방법을
간구해야 겠읍니다. 얽매이지 않게...(오늘의 적용) ^ ^ ;;
12:15
08.06.27.
사모님!
권사님 만큼이나 제게 큰 도전과 말씀묵상 방법을 알려주신 사모님!
여전히, 차분하게 말씀묵상을 올려놓으셨네요.
고맙고 반갑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잊은건 아니지만 잠시 잊고 있었는데
다시 사모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권사님 만큼이나 제게 큰 도전과 말씀묵상 방법을 알려주신 사모님!
여전히, 차분하게 말씀묵상을 올려놓으셨네요.
고맙고 반갑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잊은건 아니지만 잠시 잊고 있었는데
다시 사모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12:47
08.06.27.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그동안 안녕히 계셨어요? 혹시 그 사모님 이름 아닌 다른 자매님의 이름이 아닌가...했는데,
내용을 보니 지연사모님 맞으시군요.
그 사이 또 많은 것들을, 내려 놓으시고...이제 바울이 하는 것만 하고 계시군요.
나도 오늘...이번에 내려 놓은 거, 글로 올려 놓았는데...
내게 이런 기회가? 하면서 덥석 잡았던 거, 확 놨죠.
사모님 보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네...
오늘 사모님 글 읽는데, 작년에 복음방송에서 듣던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디모데도 바울의 편지를 읽을 때, 그립던 스승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