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도한 이사야서 예언을 따라...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딤전 1:18-19)
<선한 싸움>이, <믿음, 그리고 착한 양심>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저께 목요일,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며
묵상가운데, 위의 단어들의 연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 주면, 목요방학큐티모임이 시작되므로,
반 년만에 찾아온 공휴일의 목요일 오전을 조용히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또 누가 문을 두드린다.
아...2주 전 벼룩이 약 치겠다고, 아파트 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 그랬었지...
후다닥 아이들 깨워서 옷 입혀서 나갈 채비를 하는데...차가 없다!
친절한 우리 주인 아줌마. 우리 네 식구를 가까운 Barns and Noble에 내려 주고
두시간 후에 우리를 데릴러 오시겠다더니...
시간은 마냥 지체되고,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조른다.
Souplantation으로 들어갔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은, 직원이 아닌,
은혜신학교 전도사님과 학장사모님이셨다.
오랜만에 만난 혜숙전도사님과 반가워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데,
나를 앞줄에 서라고 양보하는 그 순간부터 무거워지는 발걸음...
내 앞줄 사람들이 한사람한사람 pay하고...사라지고...
내 차례가 오는데....
내가 식사비 내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정말 그렇게 하고 싶은데...
달랑 20불짜리 비상금 깰 일도 엄청난 지출인 이 마당에...
가방의 안 쪽 지퍼를 열어보았다.
돈이 있긴 있네...주일날 드리려고 봉해 둔 헌금봉투가 툭 튀어 나온다.
이거 식사비로 내 드리고, 주말에 남편이 주급 타오면 거기서 매꿔 넣을까?...
그 순간, 나만 보면 칭찬하는 혜숙전도사님! 사모님께 내 소개를 거창하게 하신다.
사모님에게, 내가 우리교회 큐티인도하는 집사라고 까지 얘기하시는 이 싯점에서,
그런 큐티하는 여자가 주의 종 밥값도 안 내어 드리면, 그거 얼마나 덕이 안 되는가...
이렇게 우연히 만난 건, 주의 종 대접해 드리라는 하나님 뜻인가?...
아...진짜 갈등된다...
그날 아침, 했었던 큐티가 생각났다.
너무도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 있던, 히스기야 왕의 실수하는 장면들.
그리고, 일주일전부터 디모데 서신서 통독을 하면서 유난히 다가오던 <양심>이란 단어들.
뜯어내려던 헌금봉투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으며,
너무나도 화끈거리는 얼굴로 내 식사비만 지불하였다.
그리고, “맛있게 드세요!” 공손하게? 인사하고 우리자리를 찾았다.
쫓겨 나다시피 한 아파트에서, 차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식당에서,
하필이면, 뷔페집을 택해서는...음식 담는 라인 내내 이런 고통을 겪다니...
하나님 시나리오 맞죠?
그렇지 않으면 제가 그날 식당갈 일이 뭐 있어요?
사람들이 밥 사 준대도 아이들 핑계 대며 안 나가는 거 아시쟎아요?
그 와 중에, 정신차리고 영수증을 보니, 아이들 것은 charge가 안 된 것이다.
분명히 아이 둘 나이까지 말해 줬건만, cashier가 내 것만 charge해 놓은 것이다.
여기 밥값 올랐나봐...
안 그래도 밥값 아깝던 차에, 돈 굳어서 어찌나 반갑던지...
근데...반가워 하면 안 되는 거지...
이것도, 하나님 시나리오 맞지요?
카운터에 아이들 밥값을 지불하고 돌아 와 앉으니,
피식 웃음이 났다. 바쁘다 바뻐...
옛날에 나는, 헌금봉투를 미리 준비하지도 않은 사람이었거니와
어쩌다, 작정하고 헌금봉투를 만들어 두었다가도
어려운 사람 돕거나, 갑작스런 모임에서 밥값 미리 내주며,
온 동네 착한양심? 선언하느라 돈봉투 뜯어내는 건, 선행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나는, 사람과의 돈 문제만은, 똑부러지게 처신한다.
빌린 일회용 그릇 하나도 칼같이 돌려 주어서, 사람들이 질린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 양심적인? 내가, 너무나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헌금을 아무데서나 깨뜨려 썼으니
이 부분에서 나의 이중성은 적나라하게 입증되고 만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전혀 없던 신앙생활동안,
하나님 것으로 이미 붙어진 헌금봉투 입구를 뜯어내고
내 안의 산헤립, 내 의가 요구하는 공물량을 맞추어 주고,
내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내 이름에 금칠을 하려고...
하나님의 전 은금을 벗겨내고 긁어낸 수많은 행위들을, 돌아보게 하신다.
히스기야왕은 그 금을 벗겨 낼 때,
다음에 다시 도금해서 입혀 놔야지...하는 결심도 하진 않았을까?
그러나, 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미 벗기는 그 순간에,
그는 유다의 장래를, 자손의 믿음을 <파산>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1:19)
이런 경험들을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믿음>도, 싸워서 지켜내는 것이고
<양심>도, 싸워서 지켜내야 하는것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나는 이번에, 이사야서에서 철저하게 훈련받았던
<거룩함>에 대하여,
<하나님의 것을 거룩하게 구별해 드리는 마음자세>에 대하여,
싸워 이김으로 말씀을 지켜내었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큐티를 올리고,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애를 써도
나는 항상 파선될 수 있는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
또, 싸워서 이기고야 말겠다는 공격적인 실천자세만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능히 실수를 막아 주신다는 것도 알고!
이 두가지 모두 알고! 근신함과 당당함으로
앞으로 언제, 벼룩이 약치는 날처럼 닥쳐 올 지 모를
인생의 싸움에, 깨어서 대비해야 겠다.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딤전 1:18-19)
<선한 싸움>이, <믿음, 그리고 착한 양심>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저께 목요일,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며
묵상가운데, 위의 단어들의 연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 주면, 목요방학큐티모임이 시작되므로,
반 년만에 찾아온 공휴일의 목요일 오전을 조용히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또 누가 문을 두드린다.
아...2주 전 벼룩이 약 치겠다고, 아파트 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 그랬었지...
후다닥 아이들 깨워서 옷 입혀서 나갈 채비를 하는데...차가 없다!
친절한 우리 주인 아줌마. 우리 네 식구를 가까운 Barns and Noble에 내려 주고
두시간 후에 우리를 데릴러 오시겠다더니...
시간은 마냥 지체되고,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조른다.
Souplantation으로 들어갔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은, 직원이 아닌,
은혜신학교 전도사님과 학장사모님이셨다.
오랜만에 만난 혜숙전도사님과 반가워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데,
나를 앞줄에 서라고 양보하는 그 순간부터 무거워지는 발걸음...
내 앞줄 사람들이 한사람한사람 pay하고...사라지고...
내 차례가 오는데....
내가 식사비 내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정말 그렇게 하고 싶은데...
달랑 20불짜리 비상금 깰 일도 엄청난 지출인 이 마당에...
가방의 안 쪽 지퍼를 열어보았다.
돈이 있긴 있네...주일날 드리려고 봉해 둔 헌금봉투가 툭 튀어 나온다.
이거 식사비로 내 드리고, 주말에 남편이 주급 타오면 거기서 매꿔 넣을까?...
그 순간, 나만 보면 칭찬하는 혜숙전도사님! 사모님께 내 소개를 거창하게 하신다.
사모님에게, 내가 우리교회 큐티인도하는 집사라고 까지 얘기하시는 이 싯점에서,
그런 큐티하는 여자가 주의 종 밥값도 안 내어 드리면, 그거 얼마나 덕이 안 되는가...
이렇게 우연히 만난 건, 주의 종 대접해 드리라는 하나님 뜻인가?...
아...진짜 갈등된다...
그날 아침, 했었던 큐티가 생각났다.
너무도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 있던, 히스기야 왕의 실수하는 장면들.
그리고, 일주일전부터 디모데 서신서 통독을 하면서 유난히 다가오던 <양심>이란 단어들.
뜯어내려던 헌금봉투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으며,
너무나도 화끈거리는 얼굴로 내 식사비만 지불하였다.
그리고, “맛있게 드세요!” 공손하게? 인사하고 우리자리를 찾았다.
쫓겨 나다시피 한 아파트에서, 차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식당에서,
하필이면, 뷔페집을 택해서는...음식 담는 라인 내내 이런 고통을 겪다니...
하나님 시나리오 맞죠?
그렇지 않으면 제가 그날 식당갈 일이 뭐 있어요?
사람들이 밥 사 준대도 아이들 핑계 대며 안 나가는 거 아시쟎아요?
그 와 중에, 정신차리고 영수증을 보니, 아이들 것은 charge가 안 된 것이다.
분명히 아이 둘 나이까지 말해 줬건만, cashier가 내 것만 charge해 놓은 것이다.
여기 밥값 올랐나봐...
안 그래도 밥값 아깝던 차에, 돈 굳어서 어찌나 반갑던지...
근데...반가워 하면 안 되는 거지...
이것도, 하나님 시나리오 맞지요?
카운터에 아이들 밥값을 지불하고 돌아 와 앉으니,
피식 웃음이 났다. 바쁘다 바뻐...
옛날에 나는, 헌금봉투를 미리 준비하지도 않은 사람이었거니와
어쩌다, 작정하고 헌금봉투를 만들어 두었다가도
어려운 사람 돕거나, 갑작스런 모임에서 밥값 미리 내주며,
온 동네 착한양심? 선언하느라 돈봉투 뜯어내는 건, 선행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나는, 사람과의 돈 문제만은, 똑부러지게 처신한다.
빌린 일회용 그릇 하나도 칼같이 돌려 주어서, 사람들이 질린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 양심적인? 내가, 너무나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헌금을 아무데서나 깨뜨려 썼으니
이 부분에서 나의 이중성은 적나라하게 입증되고 만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전혀 없던 신앙생활동안,
하나님 것으로 이미 붙어진 헌금봉투 입구를 뜯어내고
내 안의 산헤립, 내 의가 요구하는 공물량을 맞추어 주고,
내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내 이름에 금칠을 하려고...
하나님의 전 은금을 벗겨내고 긁어낸 수많은 행위들을, 돌아보게 하신다.
히스기야왕은 그 금을 벗겨 낼 때,
다음에 다시 도금해서 입혀 놔야지...하는 결심도 하진 않았을까?
그러나, 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미 벗기는 그 순간에,
그는 유다의 장래를, 자손의 믿음을 <파산>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1:19)
이런 경험들을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믿음>도, 싸워서 지켜내는 것이고
<양심>도, 싸워서 지켜내야 하는것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나는 이번에, 이사야서에서 철저하게 훈련받았던
<거룩함>에 대하여,
<하나님의 것을 거룩하게 구별해 드리는 마음자세>에 대하여,
싸워 이김으로 말씀을 지켜내었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큐티를 올리고,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애를 써도
나는 항상 파선될 수 있는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
또, 싸워서 이기고야 말겠다는 공격적인 실천자세만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능히 실수를 막아 주신다는 것도 알고!
이 두가지 모두 알고! 근신함과 당당함으로
앞으로 언제, 벼룩이 약치는 날처럼 닥쳐 올 지 모를
인생의 싸움에, 깨어서 대비해야 겠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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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08.06.15.
저도 오늘 선한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양심을 지키라는 말씀이 와닿기는 하는데
제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 잘 떠오르지 않았는데
자매님의 큐티를 읽으니 정말 구~체적으로 묵상하고 적용함에 감탄이 나옵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마다 말씀에 촘촘히 비추어 버릴 것과 취할 것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자매님의 그 지혜는 분명 하나님이 주신 것 같아요
저도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말씀에 비추어 생각하고 판단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지혜와 영적 민감함을 구하고 적용하도록 노력해야 겠어요
제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 잘 떠오르지 않았는데
자매님의 큐티를 읽으니 정말 구~체적으로 묵상하고 적용함에 감탄이 나옵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마다 말씀에 촘촘히 비추어 버릴 것과 취할 것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자매님의 그 지혜는 분명 하나님이 주신 것 같아요
저도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말씀에 비추어 생각하고 판단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지혜와 영적 민감함을 구하고 적용하도록 노력해야 겠어요
05:44
08.06.15.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삶의 매 순간마다 말씀과의 연결, 연결.
오늘 솔로하시는것 같아서 옆에서 짝이 되어 드리려고 했는데
저도 오늘 소범 자매님과 꼬옥 같은 내용을 묵상했기에
재방송하는것 같아서 제꺼는 안 올립니다. ^ ^
<양심>이란 단어를 따라 관주를 찾아 보았는데
사도 바울이 <양심>에 대하여 곳곳에서 무지 강조를 했더군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는 바울도 만났어요.
어쨌든 자매님의 변함없는
자리지킴 (기냥 자리 지킴이 아니라 은혜의...)에 감사를 드립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