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큐티하는 삶을 나누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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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람?

김수희
24317 2
<이사야 28:7,8>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흠, 오늘의 말씀은 유다의 형편없는 지도자들을 향한 말씀이군.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도 그 모양이었으니 공의의 하나님께서 심판하실만도 하지.
그래 그들을 거울 삼아 앞으로도 그들과 같이 되지 말고 큐티 열심히 해서 나의
거룩함을 지키자.  적용 끝.’ 하고 품위 있게 오늘의 큐티를 마치려고 하는데
나의 한쪽 구석에서 <토한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가 자꾸 나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그래  그들도 너무 했어.  그냥 남들이 못 알아 차릴 정도로만 취하고 즐기고 말것이지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록 토하기는…’   그런데 주어가 <그들>이 아니라고 하신다.

지난 주일부터 나의 맘 한구석에 계속해서 찜찜한 것이 있었다.
‘아니,  그럼 그게 바로 내가 토한 더러운것? ’

지난 주일에 교회에서 두 그룹이 연합하여 피크닉이 있었다.
그래서 토요일에 큐티 라이프 야드 세일을 참석하고는 약 100명분의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마켓으로 달려갔다.   교회의 두 집사님들과 대충 준비를 마치고 이튿날인 주일 아침에
1부 예배를 다녀와서는 세시간을 꼬박 집에서 튀기고 볶고 요리를 했다.  
가정마다 아이들도 어리고 바쁠텐데 내가 좀 희생해야지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했다.  
그리고 이번 일을 준비하며 내가 한가지 제안을 한것이 있었다.  교회에서 쓰레기 (일회용품) 가
제일 많이 나온다는 지적을 불신자들에게 받는것에 대해 평소에 늘 마음에 걸렸었다.
한번 마시고는 버리고, 뭐 조금 묻었다고 버리고, 쓰지도 않았는데 무심코 버리고…  
3주전에 교육부 헌신 예배때 외부에서 오신 어떤 목사님께서도 가능한 한 일회용품을
쓰지 않기로 자녀들과 실천해 보라고 말씀 하시기도 했다.  
설교와 큐티를 통해 맨날 적용, 실천 거리가 쏟아져 나오면 뭐하겠나?
정말 허공에 떠다니는 말뿐인 적용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만큼은 일회용이
아닌 진짜 그릇을 각자가 들고 올것을 나 혼자 일방적으로 제안했다.
괜히 귀찮아들 하면 어쩌나 망설여지기도 했으나 그래도 음식을 내가 준비하는 수고에 비하면
다들 그정도는 개의치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공원에 도착하니 일회용픔 접시가 나의 눈 앞에 우뚝 솟은 고층 빌딩처럼 떡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순간 마음이 상하면서 맥이 타악~ 풀리고 말았다.  
아니 너무들 하지 않은가?
주일 예배는 나오지만 아직은 믿지 않는 형제의 가정도 그릇을 들고 왔는데…  
정말 민망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음 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는 혼자 투덜 거렸다.  
이렇게 그릇 하나 들고 오는것도 귀찮은데 다른 영혼들한테 무슨 관심이 있겠어?  
등등 별별 생각들이 툭툭 튀어 나와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마음 속에서 풍랑이 일었다.  풍랑이 아니라 나를 단숨에 삼켜 버리는 폭풍이었다.  
실컷 고생만 해놓고 이게 뭐람….  
한편으로는 그릇을 들고 온 몇 사람에게 무지 미안했다.  괜히 번거롭게 한것 같아서리…
저녁이 되어서야 대충 정리를 해 놓고는 그제야 말씀을 들여다 보니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라는 말씀만 나의 눈에 들어 왔다.  
“주여 이 말씀을 약속의 말씀으로 잡겠나이다아~   견고한 심지가 되게 하소서 ~”
나의 일어난 풍랑을 잠잠케 하려고, 마음에 평강을 얻어 보려는 속 보이는 큐티를 했다.
아니, 큐티가 아니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얕은 (허튼?) 수작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의 마음이 “모든 상에 있는 토한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라는 말씀에 왜 나를 자꾸 머무르게 하는 것일까?    
상상력을 동원해 큐티를 하자면 구역질 나는 냄새만 확확 풍기는데…  
그리고 <모든 상> 이 왜 <그들의 상> 이 아니라 <나의 상>으로 보이는 것일까?
혼자 투덜거린 말들이 토한것 더러운것이라고 하신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3:3>
맞다.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려고 큐티를 매일 하지만 결국 나의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온통 원망과 불평이 나의 입에 가득하여 육체로 마치는 한심한 하루였다.    
나의 생각을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나부터 조금씩, 조용히 실천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마음 밭에 문제가 있었다.  
올해 첫 암송 구절인 눅 6:45 이 생각났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더니 나의 마음
밭이 선하지 못하고 악했음이 하나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분주한 가운데 시간을 놓쳐 버린 큐티, 대충 의무적으로 한 큐티로는 나의 마음을 충분히
적시지 못하기에 나의 악한 마음이 표면에 드러나고 말았다.

주님, 또 저의 지나친 열심이 저를 삼키려 했습니다.
독주에 취해 비틀거린 것이 아니라 일에 취해 뒤로 넘어지고 자빠져 버둥거렸습니다.
이제 말씀으로 저 자신을 흠뻑 적시기 전에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  
매일 아침이 Quiet Time with God 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저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다스림 받기를 원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렘17: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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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자매님의 열심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열심, 특심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영혼을 살리고 먹이고 입히시는 작업을 끊임없이 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작은 여우가 우리의 포도원을 허물고자 등장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작은 여우를 그냥 넘기는 자매님이 아닌것을 말씀안에서 압니다.
하나님!
그분이 매일 매일 주시는 말씀으로 작은 여우는 잡히게 되어 있지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여우는 반드시 우리의 사정거리 안에서 맵돌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침투하지 못하도록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은 우리의 할 도리인듯 합니다.
자매님처럼요!
12:03
08.05.22.
김수희
아~ 내가 토한거 도로 먹지나 말아야 할텐디... ㅋㅋㅋ (잠 26:11)
12:20
0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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