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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트머리에 두시는 은혜

Its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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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 9)

 

‘끄트머리에 두신 자’라는 말씀을 읽으며, 얼마전 중국으로 들어가신 선교사님 생각이 났다.

비행기를 몇번을 갈아타고 겨우 도착해서 6주간의 격리를 해야하는 길을, 중국 선교사들이 모두

추방당한 이 상황에서 겨우 겨우 선교지에 도착했다. 추방을 당할지, 어떤 험한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선교지에 도착한 것에 감사하셨다. 오라는 사람도 없고, 가지 말라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그곳이 끄트머리 자리가 된다해도 괜찮다는 듯이 가셨다.

 

반면, 사도 바울은 어떤 상황에 있었기에 "하나님이 나를 죽이기로 작정 하셨나보다" 라고

느꼈을까? 어떤 일들을 겪었길래 "끄트머리인 마지막, 가장 낮은 곳에 두셨다"고 여겼을까?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그 삶을 살아냈을까?"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침에 회사에 출근 하자마자 이메일을 읽으며 하루일을 시작 하는데,

얼마전에 나를 불쾌하게 했던 그 사람에게서 다시 이메일이 왔다.

얼마 전 회사에서 송금했던 액수가 틀렸다며 열배가 되는 액수를 보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무례하고 비상식적이어도 될까? 벌써 다 끝난 일로 이렇게 신경쓰게 하는 것이 참

실망스러웠다. 자존심도 상하고 불쾌해서 이번에는 정말 안참으리라 생각했다.

 

씩씩거리며 "그래도 말씀에서 무엇이라 하실까" 생각하며 잠시 아침에 묵상한 말씀을 다시 보는데,

바울이 자신(제자들의 삶)의 삶의 모습을 열거하는 말씀에 왈칵 눈물이 났다.

 

1)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된 자

2)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신 자

3)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고, 약하고, 비천하게 된 자

4)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된 자

5)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는 사람

6)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하지만 축복하는 사람

7) 박해를 받으면 참는 사람

8) 세상의 더러운 것처럼 된 사람

9) 만물의 찌거기 같이 된사람

10) (이런 대접, 이런 삶을 살면서도, 이런상황에 있으면서도) 복음으로 성도를 낳는 사람

11) 나를 본받으라고(이런 삶을 본받으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

 

어떻게하면 이런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바울은 비천하게 되고, 모욕을 당하고,

구경거리가 되고, 박해를 받고, 세상의 찌꺼기 같은 존재처럼 여겨져도 분노하고 억울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축복하고 참았다.(12절)

 

주님도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비천한 대접을 받으시고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셨고,

주리셨고,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런데 나는 비천은 커녕 내 자존심만 건드려도 파르르한다.

모욕은 커녕 ‘경우가 아닌 태도’ 만으로도 못 참겠다고 벼르고 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는 말씀에서,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하고 싶은 교만한 고린도 교인들의 모습이 내 모습임을 보았다.

 

"그럼 오늘 내가 감내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주님께 물었다.

그리고 ‘모욕을 당하나 축복한다’는 말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말씀을 붙잡고, 벼르던 마음을 누르면서 축복하며 이메일을 정중하게 보냈다.

오늘 하루 문득 그분이 생각 날때마다 축복했다.

조금 전에 그분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본인이 착각했다고, 많이 미안하다고…”

 

주님이 사신 삶, 바울의 삶을 묵상하니 나를 낮추시려고 보내시는 자리가 은혜의 자리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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