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이 나오는 말씀을 읽을 때 마다 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 라는 질문에 늘 궁금함을 가져왔으나 이에 대한 시원스러운 답변은 성경에서도 명백한 설명을 하지 않았기에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제물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마음의 문제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존 비비어의 “순종”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가 가인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그것은 순종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맏아들인 가인은 농부였고, 가인의 동생이자 둘째 아들인 아벨은 목자였습니다. 성경은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재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재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다”(창4:4-5)고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가인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목축업을 하는 아벨보다 더 열심히 일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에 있던 모든 피조물에는 몸을 덮는 것이 있었습니다. 네발짐승은 털이 잇고, 물고기는 비늘이 있고 새는 깃털이 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물리적인 옷이나 덮을 것은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영화의 “관”을 씌어 주셨습니다(시8:5). 하나님이 그들에게 입히신 영광은 벌거벗은 몸이 보이지 않게 가려 줄 정도로 눈부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했다”(창2:25)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옷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는 순간 상황이 변했습니다. 불순종 전에는 전적으로 영혼이 지배했으나 이제는 육체가 지배하게 된 것이지요.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후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고”(창3: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단어는 그들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모르던 지식을 소유하게 된 것이지요. 타락 전에 그들의 행동은 선악의 지식이나 옮고 그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지배 되었습니다. 신뢰와 사랑에서 나오는 순종하는 마음이 행동의 동기였고 옮고 그름은 그들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온전히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그들은 하나님 밖에서 선악에 대한 지식의 근원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자기들을 다스릴 하나님이 필요 없었습니다. 자기들 안에 옮고 그름에 대한 인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불순종 후 즉시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즉 땅의 소산으로 벗은 몸을 가렸습니다. 가렸는데도 여전히 벗은 것 같아 그들은 숨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 발견한 옳고 그름에 대해 느낀 대로, 자기들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 잎으로 덮은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죄한 짐승을 죽여 그 가죽을 아담과 하와에게 입히심으로 당신께서 받으실 만한 덮을 것, 즉 벌거벗음에 대한 제물을 일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은 바로 그것이었지 땅의 소산은 아니었습니다.


   불순종한 시점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가인과 아벨은 달랐습니다. 부모는 아들들에게 하나님이 받으실 제물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가인도 자기가 가져온 땅의 소산은 하나님이 받으실 수없는 제물이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즉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아벨처럼 어린 아이의 순수함으로 순종하지 않고, 이성에 따라 작용하며 자신의 옮고 그름의 논리에 따라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도 그 의미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가인아, 왜 분을 내느냐? 그럴 필요 없다. 하나 배워라. 네 동생처럼 내게 순종하면 내가 아벨과 그 제물을 받은 것처럼 너와 네 제물도 받을 것이다”(창4:6-7). 우리의 신앙생활이 옮고 그름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되기에 오늘날 많은 교회가 분열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음을 알았습니다. 참된 믿음은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순종에서 나오는 것이며, 최고의 예배는 순종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히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