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다서 1: 11-16)

15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to judge everyone, and to convict all the ungodly of all the ungodly acts they have done in the ungodly way, and of all the harsh words ungodly sinners have spoken against him."

어제 말씀 중에 가만히 들어온 경건하지 않은 자가 있다고 했는데 오늘 말씀에 구약에 있는 구체적인 인물인 가인, 발람, 고라를 예로 들고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암초와 같은 존재인데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물이 없는 구름이요,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된 별들이라고 시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고 있다.
유다는 이들의 최후가 '경건하지 않음' 으로인해 경건하지 않은 행동과 완악한 말로 인해 뭇사람(everyone)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정죄함을 받는다고 한다. 경건하지 않음 이라는 말씀이 계속 반복되고 있어서 우선 경건의 뜻을 찾아보았다. 어떤 것을 소중히 받들고자 하여 엄숙하다 라고 국어 사전에는 나와 있다. 여기서는 ungodly 라는 영어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하나님이 없는 것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어서 주를 거스르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유다는 16절에서 친절히 'ungodly'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준다. 원망하는자, 불만을 토하는자, 정욕대로 행하는자, 자랑하는자,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는자

예레미야을 통하여 선포되었던 심판의 말씀이 신약시대에 와서도 다시 선포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예레미야 25장에서 모든 사람들, 땅끝까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예언 되었는데 그 심판을 들어서 알고 있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거나 들어서 알고 있는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 (1절)에게 다시 선포되고 있다.
그리고 이말씀은 오늘 나에게도 선포되어야 하는 말씀이다.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대로 사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큐티를 한다고 하나 조금만 방심하면 육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나를 보게 될때가 너무나 많다. 작년부터 시작한 빵집에서의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했다. 그런데 빵을 사고 파는 아주 작은 일상적인 일 가운데서 5분도 안되는 그 순간에도 각 사람의 성품이 드러난다. 웃는 얼굴로 다른 손님들과 캐쉬어를 배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례하며 안하무인인 손님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시장에 가면 어떻게 행동했었지? 가정에서는? 교회에서는? 무의식 중에 이루어지는 나의 행동을 많은 사람들은 보고 있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조금만 내뜻대로 안되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하나님의 뜻보다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빨리 움직이는 나. 유다의 말처럼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는자처럼 살게된다.
어떻게 힘써 싸울까?
우선 말씀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 뜻대로 판단하는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기대해야겠다. 사실 무례한 손님을 만나면 화가 난다. 그러면 하나님 보고 계시지요? 하고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그 손님을 위하여 잠깐 기도하고
잊어버리려고 한다. 이 사건을 묵상하며 억울하여 불평이 나오고 나의 평안을 빼앗기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