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A better day !
등록일 2008-07-12
작성자 박소범
본문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아모스 8:10>
어제 저녁, K집사님의 개업예배가 있었다.
초대받은 주일부터 나흘 동안 고민했다.
축하금을 많이 드리고 싶은데,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2주전에도, 같은 공동체를 섬기고 있는 A집사님의 개업예배에 갔어야 했는데, 못 갔다.
어제는, 꼭 참석해야 할 관계라서 더 괴로웠다.
솔직히 빈 손으론 갈 자신이 없었기에...
나흘 동안, 그 어떤 말씀으로도, 이 문제에 대한 마음이 풀어지지 않아서,
안 가야지...했다.
어제 오후에는, 드디어 오늘 본문에서 해답을 찾으려 눈에 불을 켰다.
근데, 왜 하필, 가난한 자에 대해서인가...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는 말이, 나를 낙심케 했다.
a bitter day...?
잠잠히...곤고한 날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본심을, 읽어 보려 애썼다.
묵상가운데,
경제적으로는 가난하게 하셨지만, 영적으로는 나를 곤고함에 두지 않으신, 하나님을 만났다.
감사가 물처럼 마음에 고였다.
그런 감사의 마음이, 나로 하여금,
내 형편에서 최대한의 액수인 30불을, 봉투에 넣을 용기를 주었다.
솔직히 예전 같으면, 30불 드리느니 안 주는 게 낫다고 여겼을, 나였다.
<사람>에게 주는 거니까!
이사야서에서 만났던 하나님과의 데이트가 떠올랐다.
내가 하나님께 <20불의 건축헌금>을,
감사의 눈물로 드렸던 4개월 전을 기억나게 하셨다.
다림줄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상상해 보았다.
다림줄에 대어 보니,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건축헌금보다 더 드리는 개업축하금이니까,
정말 풍성한 금액으로 느껴져서, 챙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A집사님네는 왜 그 금액을 가지고 가지 못했을까...? 에 대해서도
말씀 앞에 내 마음을 끄집어 내어 보았다.
그 분들은, 나와 머-언 관계의 사람들이어서다. 그분들은 내 형편을 모른다.
그래서, 그 분들은 나의 30불에 당황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K집사님은 동일한 금액을 고마워 해 줄 만큼, <내 형편을 잘 알고 있기에>,
죄송스럽긴 하지만, 이해해 주실 것이 믿어졌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심정도 깨달아졌다.
K집사님에게 <나의 형편을 이해하리라 신뢰하는 마음으로> 드리고 왔더니,
하나님도 여지껏, 내가 드린 작은 봉사와 작은 헌물을
귀하게 받으셨으리라는 확신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K집사님보다 나를, 진짜로 더 잘 아시니까!
광야 40년 시절부터 이스라엘의 곤고를 해결해 주시기 시작하셔서
여로보암 2세 때에 이르도록 부요에 풍부를 더하셨건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려 드린 건, <곤고함>이었다.
하나님을 곤고하게 만든 주범인 이스라엘!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곤고한 날>을 계획하지 않으신다 해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시면...!
그들이 자동적으로 곤고해지는 원리를,
이스라엘로 하여금 깨우쳐 주려 하신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었을까?
베푸신 축복을 거두고 싶지 않으셔서...
곧, 내게 a bitter day 가 아닌, a better day 를 주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적용>
하나님이, 개업예배장소에서, 바이올린 하는 준 친구네를 만나게 하셨다.
그저께 결단한 대로, 아들이 대예배 때 바이올린 연주하는 것을 보았는데
참 근사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아들을 참 잘 키우셨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랬더니, 그 엄마도, 내가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웠다고 칭찬을 되돌려 주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면, 결단한대로 할 마음이 식었을텐데...
기회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제 저녁, K집사님의 개업예배가 있었다.
초대받은 주일부터 나흘 동안 고민했다.
축하금을 많이 드리고 싶은데,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2주전에도, 같은 공동체를 섬기고 있는 A집사님의 개업예배에 갔어야 했는데, 못 갔다.
어제는, 꼭 참석해야 할 관계라서 더 괴로웠다.
솔직히 빈 손으론 갈 자신이 없었기에...
나흘 동안, 그 어떤 말씀으로도, 이 문제에 대한 마음이 풀어지지 않아서,
안 가야지...했다.
어제 오후에는, 드디어 오늘 본문에서 해답을 찾으려 눈에 불을 켰다.
근데, 왜 하필, 가난한 자에 대해서인가...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는 말이, 나를 낙심케 했다.
a bitter day...?
잠잠히...곤고한 날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본심을, 읽어 보려 애썼다.
묵상가운데,
경제적으로는 가난하게 하셨지만, 영적으로는 나를 곤고함에 두지 않으신, 하나님을 만났다.
감사가 물처럼 마음에 고였다.
그런 감사의 마음이, 나로 하여금,
내 형편에서 최대한의 액수인 30불을, 봉투에 넣을 용기를 주었다.
솔직히 예전 같으면, 30불 드리느니 안 주는 게 낫다고 여겼을, 나였다.
<사람>에게 주는 거니까!
이사야서에서 만났던 하나님과의 데이트가 떠올랐다.
내가 하나님께 <20불의 건축헌금>을,
감사의 눈물로 드렸던 4개월 전을 기억나게 하셨다.
다림줄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상상해 보았다.
다림줄에 대어 보니,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건축헌금보다 더 드리는 개업축하금이니까,
정말 풍성한 금액으로 느껴져서, 챙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A집사님네는 왜 그 금액을 가지고 가지 못했을까...? 에 대해서도
말씀 앞에 내 마음을 끄집어 내어 보았다.
그 분들은, 나와 머-언 관계의 사람들이어서다. 그분들은 내 형편을 모른다.
그래서, 그 분들은 나의 30불에 당황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K집사님은 동일한 금액을 고마워 해 줄 만큼, <내 형편을 잘 알고 있기에>,
죄송스럽긴 하지만, 이해해 주실 것이 믿어졌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심정도 깨달아졌다.
K집사님에게 <나의 형편을 이해하리라 신뢰하는 마음으로> 드리고 왔더니,
하나님도 여지껏, 내가 드린 작은 봉사와 작은 헌물을
귀하게 받으셨으리라는 확신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K집사님보다 나를, 진짜로 더 잘 아시니까!
광야 40년 시절부터 이스라엘의 곤고를 해결해 주시기 시작하셔서
여로보암 2세 때에 이르도록 부요에 풍부를 더하셨건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려 드린 건, <곤고함>이었다.
하나님을 곤고하게 만든 주범인 이스라엘!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곤고한 날>을 계획하지 않으신다 해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시면...!
그들이 자동적으로 곤고해지는 원리를,
이스라엘로 하여금 깨우쳐 주려 하신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었을까?
베푸신 축복을 거두고 싶지 않으셔서...
곧, 내게 a bitter day 가 아닌, a better day 를 주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적용>
하나님이, 개업예배장소에서, 바이올린 하는 준 친구네를 만나게 하셨다.
그저께 결단한 대로, 아들이 대예배 때 바이올린 연주하는 것을 보았는데
참 근사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아들을 참 잘 키우셨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랬더니, 그 엄마도, 내가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웠다고 칭찬을 되돌려 주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면, 결단한대로 할 마음이 식었을텐데...
기회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김수희님의 댓글
김수희 작성일
세상의 눈으로 보면 비참하게 여겨지는 상황에서도
더 좋은 날을 허락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가진 소범 자매,
큐티하는자들의 특혜, 하나님의 은혜올시다 그려... ^ ^
소범 자매에게 그런날이 속히 올것이라 저도 그렇게 믿어요.

문향미님의 댓글
문향미 작성일
자매님을 통해 큰 영광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사는 모습은 아무 것도 내세울 것없는 모양이지만
우리의 약함을 들어서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전 1:26-31
첨에는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하실까
생각했지만 말씀 안에서 나를 그렇게 하셔야만 했던
하나님의 계획과 그 마음을 이제는 알기에
비록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당당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자매님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얻고 열심으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는
모습들이 눈에 선합니다.
무엇보다 큐티 나눔을 통해 영혼의 강건한 자로 세우시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는 약하여 할 수 없지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음을 선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