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전에는,,그리고 지금도,,그러나 이제는,,> 디도서 3:1-7
<3절: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자요
가증스로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디도서가 목적하는 메세지가 어떤 양식이 되어 나에게
다가올까를 아주 많이 생각하게 된 오늘...
멎진 먹거리보다는 나에게 필요가 되는 먹이가 되길 소망하며
바라본 오늘의 본문에 "우리도 전에는~~~" 이 말이 걸린다.
골로새서와 디도서를 묵상하게 되면서
주위에 공동체 식구들
그 외에 제자 훈련에서 만나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었던 사람들..교회 목사님들 권사님들 장로님들
집사님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때로는 도전이 되었던 상황과 사람들
때로는 상처가 되었던 상황과 사람들속에서
내가 걸러서 바라보야야했던 일들이 기억난다.
은혜가 되던,걸림돌이 되던
모두가 내게는 하나같이 교훈이 된다.
전에..정회 자매의 묵상중 40이란 나이 "불혹의 나이"라...
어떤 유혹에도 이길수 있는 나이라고 한말이 기억난다.
뭐라도 다----해 낼수 있을것 같던 30대의 나이가 이년이나 더 지난 지금..의
40대의 나이에 디도서를 묵상할수 있는것도
"조주희"자매의 묵상처럼..이유가 있겠지 싶다.
30대에 사업의 어려움을 겪었을땐
한치의 두려움도 없었고
무엇이든 하면 다 -------된다는 근거(?)없는 확신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적이 있다.
사람들의 실수도 용납이 안 갈정도로
용솟음쳤던 열정들이
40이 넘어 만난 풍랑으로 말미암아
자신감도,근거 없던 확신도,없어진걸 발견하던날..
예전에 용납안되던 사람들의 실수들이
용납되고 그들의 실수안에 내 모습을
보게 되었던 사실을 기억해내게 된다.
피차의 모습을 보며 닮아가기도 하지만
피차의 모습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며
하루하루 하나님께로 가까히 갈수 있는것을
"우리도 전에는~~"이란 말속에서
발견한다.
디도서를 통하여 관계성의 깊이를 배우게되는 지금..
바울의 이 말("우리도 전에는~~")을 내 삷에 적용해 보기로 하지만
그 적용을 하기엔 내 자신의 못남의 크기가 너무 커서
안될지도 모른다.
지금도~~~
어리석고,순종치 아니하고,각색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하고
악독과 투기로 지내며 가증스럽고 미워하는 자로
남아있는 내 파렴치한 모습이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에 대한 자비와 사랑하심을 나타내심으로(4절)
나의 행위대로 갚지 않으시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과
중생의 씻음, 성령의 새로움으로(5절)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보기로 결단함과 함께(7절)
풍성한 성령님의 은혜를 (6절)
잡아보기로 결심한다.
성령님의 도움없이는 내가 나 인지조차 분별할수 없는 나이......
40대가 아닌가........!!
골로새서와 디도서가 교훈하는
질서의 법칙을 (관계에서 지켜야하는 계명들)
40대에 들어서 알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과연.......!!
악의 세상으로 부터 구해내야할 주의 백성들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걸어가야하는 광야의 생활을
좀더 나은 관계로,제데로 가르쳐서
나에게 맡겨질 양(?)들을 이끌라고
하시는 거였을까?......생각해본다.
내가 전에 살았던 삶을 발판삼아
지금도 연약하여 쓰러질지라도
성령님을 의지함으로
이제는 누구라도~~~~
하나님의 후사되는 길에 앞장서라고
마음속 깊은곳에서 울려퍼지는
그 분의 .........음성에
내 머리 조아려 들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