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이제부터는 더 이상...(So no longer)
본문
본문: 고린도후서 5장 16절 -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아니하노라.
본문은 '육체대로' 라는 단어를 거듭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예전에는 모두 그리스도를 그와같이 알았었다
(육체대로 알다)라고 분명히 이야기한다.
또한 이제부터는 그러한 방법 즉, 육체대로 그리스도를 알지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면 육체대로 그리스도를 알았다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 나는 과연 그러한가? 묵상에 들어갔다.
영어성경을 보니, " We regard no one from a worldly point of view. Though we was once regarded
christ in this way."라고한다. 육체대로 알았다라는것은 우리가 세상적 관점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라는것이다. 그러면, 나는 예수님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있는가? ....
더 자세히 알고싶어 전절로 가보니 사도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자를 위하여살게 하려 함이니라." 나자신을 위하여 사는것,,
이것이 세상적인 관점으로 사는것이요, 육체대로 주님을 아는자임을 깨닫게된다. 그와 반대가 되는 댓구의
절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것이 육체대로 그리스도를 아는것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깨닫는다.
실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겪기 전, 제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육체대로 아는자들이었던 듯하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본인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고 이야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서로 네가 크냐 내가 크냐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고,가룟유다는 자신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와 실제의 그리스도가 다름을 알고는 예수를 팔아버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인들의 생각과 다른 메시야임을 깨닫고 그런 왕을 거부하며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다.
나도 아직 예수님을 나의 도움이 되시는 분이요 내편에 서서 내삶을 축복해 주시는 분 정도로 그분을
알고있는것은 아닌지...., 제자들이 더 높은자리를 두고 싸우듯, 나 또한 나 알아주기에 나 내세우기에 민감하다.
누가 나보다 잘되거나 환경이 좋으면 부러워하며 실족한다. 자식이 잘되는것이 주님이 나를 축복해 주시는것
마냥 착각하고 그렇게 해 주시길 붙들고 기도한다.
내 삶이 어려워지면 어쩌나 조바심을 느낀다. 내 안락과 평안을 위해 기도로 가장한다.
나는 아직도 나를 위해 살고있다. 육체대로 주님을 아는 자에 머물러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부활한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후에야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요 새것이 되었다.
사도바울과 같이 더 이상 예전과 같이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사는자에서 벗어나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 관점이 완전히 바뀐것이다. 세상적인것에서 하늘의 것으로 말이다.
(They do so no longer) 나도 간절히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길 소원한다. 나도 더 이상 세상적 관점으로,
육체대로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길 원치 않는다. 사도바울의 말처럼, I do so no longer!! 당당히 외치고 싶다.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생각해본다.
예수님이 이땅에 왜 오시었는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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