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피난처이신 예수님으로부터의 초대
본문
본문: 히브리서6장8절-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마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하심이라.
피난처는 재난이나 위험으로부터 피해 피신하면서 안정을 취하는 곳이다. 지난번 일본쓰나미 사건이 떠올랐다.
쓰나미의 피해로 모든것이 쓸려나간 일본의 수많은 주민들은 빈손이 되어, 소망이 모두 끊긴상태에서
피난처로 대피해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모든 소망이 끊긴후 당장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찾는곳이 "피난처"이다.
성경은 고스란히 이야기한다. "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라며 말이다.
예수님 대한 많은 표현 중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피난처이신 예수"일 것이다.
그런 피난처이신 예수님에게로 가서 안식하려면 쓰나미 피해 이후의 상황처럼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져야한다.
빈손이 된 자가 그분의 품에 들어가 안식할 수있으며 그분이 주시는 참된 소망을 알게된다.
무엇하나라도 내가 의지할 대상이 남아있다면 우리는 그분의 피난처로의 초청에 참여할수없다. 그럴 필요를 전혀
못느끼는것이다. 요즘 내삶은 피난처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초청받고 있다. 소망이 없고 실족하게 되는 상황들이
자꾸 펼쳐진다. 남편의 박사과정 졸업은 곧 돌아오는데 사역자리는 모호해지고 얼마전 " 딱 이곳이야"라며 지원했던
교회에서는 안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기는 곧 출산시기가 돌아오는데 친정어머니는 일터에서 안 좋은 일을
겪게되시어 오실 수없게 된것이다. 아들녀석은 얼마전 눈을 다쳐 나를 너무도 놀래게 하였다. 감사하게도 눈에는
이상이 없지만말이다. 자꾸 믿고있던 마음의 의지들이 하나둘씩 잘려나가 빈손이 되는듯한 느낌이다.
본문 묵상을 통해 피난처이신 예수님에게로 들어가는 거룩한 초대임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성경은 그렇게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주신다하신다. 피난처도 감사한데 커다란 안위를 주신다니
귀가 더욱 열린다. 그 안위란 첫절의 제시처럼 하나님께서 직접하신 두가지 사실, 그것도 변치않으실 두가지란다.
그 두가지가 무엇일까? 첫번째는 신실하신 약속이요, 두번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크신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신
보증의 맹세란다.
나를 사랑하시어 독생자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구원하신 그 사랑의 언약과 맹세, 죽인자를 살리신이가 나 또한
살리시어 영원한 저 나라를 주시겠다는 보증의 맹세를 지금도 끊임없이 약속하시며 사랑의 맹세를 베푸시는
이해 할 수없는 조물주와 피조물과의 관계가 피난처에 와있는....당장의 소망을 위해 피해있는 내게 큰 안위를
안겨주신다. 세상을 향한 소망이 끊겨나가고 빈손이 된 자만이 예수님의 피난처로 들어가게 되며 주시려고
하는 큰 안위를 바라보게 되는것같다. 그분이 주시는 주시는 안위로 참 소망을 얻으며 신실한 약속을
붙잡고 나아가게 되는 신비가 숨겨져있는듯하다.
쳥년때 읽었던 천로역정의 책이 떠오른다. 순례를 하던 여행자가 정말 절대절명의 위기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 때 그곳을 빠져나갈수있던 열쇠가 있었는데 신실하신 약속이라는 열쇠였다.
아브라함도 온갖 고난과 시험을 오래참아 약속을 받을 수 있었던것은 신실한 약속이었으리라.
지금 나의 상황을 둘러보면 쓰나미가 지나간것처럼 소망이 하나둘 잘려나가고 있지만 피난처를 찾게 하시고
고귀한 맹세와 약속으로 참 소망과 안위를 안겨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그분의 품이 감사하다.
절망이 찾아올때 신실하신 약속이라는 열쇠로 늘 빠져나오는 연습을 매일매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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