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아빠욕
본문
여호수아 8:24-35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아이성의 첫번째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한 소식을 들은 가나안 왕들은 한마음으로 모여 이스라엘과 맞서 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선택한 가나안 왕들과는 달리, 기브온 족속들은 화친을 선택 합니다. 그들은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위장하고 여호수아에게 화친을 요청합니다. 여호수아 앞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종이라 칭하며, 하나님 이름을 듣고 먼나라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그들과 조약을 맺고 그들을 살려 주겠다고 맹세까지 합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말씀은 3절-4절,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꾀를 내어” 라는 말씀 입니다. 똑같은 소식을 듣고난후 두가지 다른 반응을 보게 됩니다. 가나안 왕들은 연합하여 이스라엘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기로 결정한 반면, 기브온 족속들은 그들과 반대로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맺으려고 합니다. 기브온 족속들이 주변의 가나안 왕들과 다르게 대처하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해 집니다. 두가지 다른 반응을 바라보며, 어떤 일을 선택하거나 결정할때 내가 고려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가나안왕들의 결정을 할까, 기브온 족속의 결정을 할까, 제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
가나안 왕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일들을 듣고 두려움에 떨었다고 합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두려워서 여리고성의 성문을 꼭 닫고 사람들의 출입도 금했던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첫번째 아이성 전투때 이스라엘이 패배한 소식을 듣고 전쟁을 하기로 마음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수를 보고, 이스라엘과 맞설 용기를 얻은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왕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뒤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하지는 못했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스라엘과 화친을 원하여 스스로를 종으로 낮추는 기브온 주민들은 그들이 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실수에도 여전히 변함없이 그들을 지켜주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었던것 같습니다.
9절에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심히 먼 나라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소문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매, 라고 고백하는 기브온 주민들에 대한 설명 입니다. 당신의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아직 그들의 하나님은 아니지만, 기브온 주민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래서 두려운 상대와는 전쟁대신 화친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위장을 해서까지 하나님의 백성안에 속하기 원했던 기브온 주민들의 간절한 심령이 오히려 귀하게 여겨지는 것을 보니, 아마 나도 기브온 족속의 선택을 할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나안의 왕들처럼 사람의 실수를 보고 하나님에 대해 도전하지 않고, 기브온 주민들처럼 사람의 실수를 보고도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적용합니다.
오늘 본문을 반복해서 읽어며, 사람의 실수를 보고 그 사람을 얕잡아 보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실수와 실패는 인간이 불완전 하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하고도 예측 가능한 일인데도, 쉽게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무시하는 나의 모습을 부끄럽게 돌아 봅니다. 하물며 내가 나의 실수에도 관대하지 못하는 이유는 교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사람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 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사람의 실수와 실패도 하나님은 사용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면, 내가 좀 더 나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한 사람이 될것 같습니다.
기브온 주민들은 꾀를 내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였지만, 결국 그들의 꾀는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화친을 청한 그들은 결국 구원 받았지만, 전쟁을 선택한 가나안 왕들은 모두 멸망한 것을 보면서,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나에게도 그러한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 합니다. 기브온 주민들을 불쌍히 여겨주신 하나님께도 나도 동일하게 보듬어 주실것을 믿으며 감사 드립니다.
저에게 두번째로 다가온 말씀은 14절-15절,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라는 말씀 입니다. 단번에 승리한 여리고성 전투때에도, 한번의 패배를 겪고 다시 도전한 아이성 전투때에도,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여호수아가 기브온 주민의 화친 요청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게 납득이 잘 가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왜 묻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작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기브온 주민들의 변장과 연극에 속아, 눈에 보이는 것이 너무 명확해 보이니,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것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이 말씀을 읽는데, 뜬금없이 친정 엄마 생각이 납니다. 올해 친정살이 한달을 시작 하는 날, 저는 뜬금없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이제부터 아빠욕 하지 말자”. 그날 로마서 큐티 본문중,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라는 바울의 음성이 제 귀에 쩌렁쩌렁 울리며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얘가 무슨말을 하는거지? 하시는듯,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던 엄마의 눈빛이 생각 납니다. 말하면서도 나도 놀란 그 말을 입으로 토해내고 나니, 지난 40년동안 엄마와 주된 대화가 아빠욕 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슬프고 부끄러운 심령이 되었습니다. 철이들자 엄마는 저를 붙잡고 아빠에 대한 불만과 억울함을 토로하셨고, 어린마음에 저는 엄마가 불쌍하고 아빠는 엄마를 괴롭히는 원수처럼 느껴졌고, 그후로 모녀지간의 주된 대화가 아빠욕 이었던 것을 그날 처음 깨닫게 되습니다. 때로 누군가를 욕하는것은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살인처럼 큰 죄인것 같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습관처럼 남의 흉을 보게 되는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기전에 그랬다면 변명이라도 할텐데, 하나님을 믿고난 후에도 계속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엄마와 아빠욕을 하는것을 작은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빠욕을 멈춘것 뿐이었는데, 아빠가 순한양이 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친정살이 한달동안 화를 단 한번도 안내시고, 고맙다 수고했다를 말씀 하시며, 반찬 투정도 안하시고 식사도 잘하시고, 엄마랑 크게 다투시지도 않으시고.. 처음 보는 아빠의 모습에 저는 놀라며 하나님께 질문 드렸습니다. 아빠욕을 멈춘것 뿐인데, 정말 그것 때문에 아빠가 변하신 거 맞아요?? 설마 맞은가요?? 아마 아빠는 모녀간에 자신을 욕한 것도, 욕을 멈춘것도 다 아시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다 아시는것 같이 말입니다. 지난 세월동안의 아빠의 심통이 하루 아침에 멈춘것은, 모녀간의 죄악이 멈추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가족이니까 그럴수 있다는, 죄악의 변장에 속아 넘어가, 죄인줄 모르고 계속 죄를 반복해서 지었던 뿌리깊은 죄악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하나님 앞에서 성결은 큰 일보다 작은 일에서 넘어지기 쉽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성급한 결정은 큰 일보다 작은 일에서 저지르기 쉽다는 것을 경고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지금 큰 일 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있는데, 다섯분에게 기도 부탁을 했고, 주말까지 기도하며 결정하려고 합니다. 큰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조심스럽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작은 일들에 대해서는, 일상의 일들에 대해서는, 가령 누구를 만나고, 어떤 모임에 가고, 무슨 말을 해야하고, 나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고, 이 물건을 사야하는지 필요가 없는지에 대하여는, 매번 기도하지 않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작은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반면교사 삼아, 이제는 내 판단대로 크고 작은 일에 차이를 두지 않고, 내 앞에 주신 모든 일들과 상황에 대하여, 심지어 답을 알것 같은 일에 대하여도, 하나님께 일일히 물어야 겠다고 적용 합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꾀를 내어’ 화친하기를 원했던 기브온 주민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들이 ‘꾀를 낸것’을 죄로 여기지 않으시고, 은혜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납니다. 기브온 주민들과 같은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부족함 투성인데도 품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이제는 저를 이스라엘 백성으로 삼아주셨는데, 너무 작은 일이라는 판단으로 하나님께 묻지 않아 큰 일을 거스르는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어, 교만에 틈을 내어주지 않는 제가 되도록, 언제나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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